1990년대 중반, 필자(김유완)는 용인 외곽에 위치한 중학교를 다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내게 용인이라는 지역은 그때 세상에 전부였었던 것 같다. 형은 용인 시내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덕분에 형 손에 이끌려 그 시절 유명했던 월미도라는 곳을 처음 가보게 됐으니말이다. 형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철이라는 것도 타보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게 아주 신기하면서도 유쾌한 여행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형 손에 이끌려 도착한 월미도는 마치 외국과 같았다. 휘황찬란한 카페들이 바닷가를 마주보고 즐비해 있었고, 저마다 특색 있는 인테리어로 손짓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마음에 드는 한 카페에 들어갔다.

이국적인 조명들과 황금색 꽃무늬 패브릭 소파가 창 너머 바다를 배경으로 나를 반겨줬다. 모든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자리에 앉게 됐고, 직원이 다가와 주문받아 주기를 기다렸다. 뭘 주문해야 할지 몰라 하던 내게 형은 한 가지 음료를 주문해 줬다. 몇분 뒤 직원이 갖다 준 음료가 앞에 놓였다. 파르페라는 이름의 음료였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 파르페를 황홀하게 바라보던 필자를 잊지 못한다.

달콤한 초콜릿 우유와 커피를 흔들어 섞은 음료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덩어리가 탐스럽게 올라가 있었다. 그 위로 각종 먹음직스러운 과자들과 형형색색의 초콜릿 플레이크가 뿌려진 음료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마셔 본 그 음료는 내게 새로운 세상의 달콤함과 황홀한 맛을 선물해 줬다. 그렇게 처음 방문한 카페, 그리고 처음 마셔본 음료는 나를 호화스럽게 만들어 줬다.

그때 필자에겐 꽤나 사치스러운 음료로 기억에 남는다. 그날 이후, 그 음료와 카페에서 음료를 만들고 있던 직원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도 저렇게 멋진 모습으로 음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내가 만든 커피 음료로 예전의 나와 같이 행복한 추억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멋진 모습을 상상하며 조금씩 커피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게 됐다.

잘 익은 군고구마의 약간 탄 냄새, 달콤한 카라멜 향이 내 코끝을 자극했다. 첫 모금은 향에서 느꼈던 군고구마 맛이 혀를 타고 입안 가득 퍼졌다. 그 맛을 음미하며 목 넘김을 하고 나서야 카라멜과 사탕수수의 쌉쌀하며 달콤함이 몸 전체로 퍼지는 기분이었다. 그 달콤함은 1분 정도의 여운으로 입안에 남아서 행복함을 안겨줬다. 도대체 이게 무엇이기에 TV 속 맛집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감탄사를 표현하게 만들까?

바로 그 음료는 커피였다. 2010년 여름, 필자(김성규)는 벤처기업의 IT 모바일 회사를 다니며 하루하루 고된 업무와 미팅에 치여서 살고 있었다. 하루는 강남에서 외부 미팅을 끝내고 사무실로 복귀하기 전, 강남에서 동생이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커피 전문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은 업무로 지쳐 보인 내게 커피 한잔을 권했다. 동생이 커피 내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조금은 생소하면서 신기했다. 집중하며 커피를 만들어 가는 동생이 왠지 멋있게 보였다. 잠깐의 대화 끝에 커피는 완성됐고, 커피를 내어주는 동생을 바라보며 마시게 된 커피. 응? 뭐지? 앞서 언급한 새로운 세상의 향과 맛이 몸을 전율하게 했다. 황홀하다면 부족할 정도로. 어떻게 보면 충격이었다. 내게 커피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미팅을 할 때 필요한 요소, 혹은 피로를 잊기 위해 마시는 수단에 불과했기에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다. 커피를 두어 모금 더 마시고 난 뒤 동생에게 놀라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정말 커피야?” 라고. 그때 대답해 주던 동생의 모습과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정말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형! 그게 바로 커피야!” 알게 모르게 우린 서로에게 커피라는 계기를 선물했고, 우리 형제의 커피인생이 시작됐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것,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직업으로 삼거나, 취미로 남길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 계기가 찾아오는 시점 또한 모두 다를뿐더러 알게 모르게 찾아 왔다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린 우연히 찾아온 커피라는 매력에 빠졌고 현재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동생이 말했다. 커피라는 것은 생각과 달리 쉽지 않고, 많이 민감해서 계속 바라보며 대화하고 인내를 가지고 배워가야 한다고. 참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우리는 커피감정사로 세계의 커피 산지를 직접 가서 접해보기도 했고, 국내에 들여 온 전 세계 수천, 수만 가지 커피를 경험했다. 맛봤던 커피는 한잔, 한잔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우연찮게 찾아온 이번 기회에 여태 보고 느꼈던 커피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공유하고자 한다. 글로 전하는 재주가 부족해 어려울 때도 있겠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 해주고 인내해 주길 바란다. 앞으로 꺼내는 이야기로 커피에 대한 계기가 만들어지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이번 호부터 1년여 간 케이브로스 김성규 대표와 케이브로스로스터스 김유완 대표의 ‘김씨 형제의 커피 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커피 감별부터 바리스타, 커피머신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국제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커피 관련 강의뿐 아니라 국제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커피전문가입니다. 바리스타 양성과 카페 창업 컨설팅은 물론, 대안학교와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무료 강의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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