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만난 빈 새둥지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코로나로 집콕하던 일상이 추운 날씨 덕분에 더 자연스러워졌다. 가끔씩 하는 동네 산책이 문밖을 나서는 유일한 일이 되고 있다. 다른 계절과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뒤늦게 싹을 틔운 풀들은 땅바닥에 붙어 초록색 명맥을 근근이 유지하고, 간당간당 붙어있던 갈색 나뭇잎마저 떨어진 나무들은 을씨년스러움에 절정을 찍는다. 황량한 숲에서 울리는 딱따구리 소리는 가뜩이나 추운 산책길을 쓸쓸함으로 가득 채워준다. 벌거벗은 숲이라 나뭇잎에 한창이었을 땐 보이지 않던 작은 새둥지가 보였다. 

부드러운 풀잎을 모아 지은 작은 둥지는 여름내 새끼를 키워낸 임무를 다하고 덩그러니 남았다. 빈 둥지마저 겨울의 쓸쓸함을 더해준다. 그 뒤로 무채색의 숲에 한 점 초록이 눈에 띈다. 초록의 현란한 여름 숲에선 보이지 않던 대나무숲이다. 어렸을 적 방학이 되면 늘 외할머니 댁에 가곤 했는데 할머니 담장에는 대나무숲이 있었다. 여름 대나무숲 옆 툇마루에 앉아있으면 시원한 바람과 그늘 덕에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겨울밤 바람결에 대나무 잎이 스치는 소리 또한 신기했다. 당시 우리 동네에선 흔하게 볼 수 없었기에 할머니집의 대나무숲은 뭔가 신비로운 대상이었다. 
 

눈 내리는 대다무숲

대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무 중 10위 안에 드는 나무다. 생김새가 독특해 쉽게 구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군자 중 하나로 학창시절부터 친숙하게 접할 수 있으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대나무는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해 덕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된다. 윤선도의 시조 <오유가>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게 사철 늘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라며 대나무를 칭송했다. 

대나무는 나무일까? 아닐까? 대나무를 이야기할 때 항상 따라붙는 질문이지 않을까?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위 시조의 문구처럼 과거에도 그 궁금증은 다르지 않았나 보다. 대나무는 이름에 나무라고 붙여졌지만 벼과 여러해살이 상록초분이다. 보통 목본류라 일컫는 나무는 목질 부분과 부피성장을 하는 형성체로 구성되는데, 대나무는 목질화 된 부분은 있지만, 형성층이 없어 부피성장을 하지 못한다. 키가 크고 단단히 목질화 된 줄기 특성 때문에 ‘대나무’라는 이름이 붙었으리라 추측된다. 

대나무는 매년 죽순이 나오며, 하루에 최대 1m씩 자라서 20일이면 키와 두께가 다 자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왕성한 성장활동을 하는 식물이다. 큰 키에 비해 굵기가 가늘고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바람에 쉬이 쓰러질 수 있는데, 약 20~30cm 간격으로 마디가 형성돼 있어 얇은 줄기를 지탱해주고 단단히 받쳐준다. 번식은 주로 땅속줄기로 하는데, 번식력이 어마어마해 구들장도 뚫고 나온다고 하니 대나무를 심을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한다. 필자도 생울타리용 대나무를 심을 요량으로 알아보던 중 어느 시골집 아궁이에서 대나무 싹이 나오더란 이야기를 듣고 바로 포기했다. 

번식력이 좋은 대나무는 꽃이 잘 피지 않아 대나무 꽃을 본 사람은 흔치 않다.

대나무는 꽃이 잘 피지 않는다. 50~60년, 길게는 100년이 지나야 핀다고 하니 대나무 꽃을 본 사람이 흔치 않을 것이다. 땅속줄기 번식력이 어머어마 하니 꽃을 피워 번식하는 번거로움을 선택하지 않는 듯 하다. 땅속줄기로 번식한 대나무 숲은 결국 한 개체나 마찬가지이니 한 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그 숲의 다른 나무들도 같은 해에 꽃을 피운다. 초본류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시들 듯이 대나무도 꽃이 피면 잎이 마르고 시든다. 생육조건이 나빠지는 환경에서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멀리 퍼뜨리려는 대나무의 마지막 노력이 아닐까.

대나무는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존재다. 과거 대나무 울타리부터 대나무 바구니, 여름밤 더위를 식혀주는 죽부인, 대자리, 대나무칫솔, 요즘은 대나무를 이용한 섬유도 나온다. 이렇듯 우리 생활 속에 대나무 공예품이 많이 이용된다. 요즘은 조경용으로 각광 받고 있어 야외공원이나 실내 정원에도 대나무를 많이 심는 추세이다. 길고 긴 코로나와의 싸움으로 지쳐가는 요즘, 추운 겨울에도 푸르른 대나무로부터 인내와 강인한 삶에 대한 의지를 배워야겠다. 코로나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