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문화유산 이야기5-원삼 고초골 공소

130년 한옥 양식 가치 인정 근대문화재 지정
 

고초골 공소는 1891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최근에도 미사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거리에는 총천연색의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고 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지는 신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올해는 만끽하지 못할 것 같다. 전 세계의 축제이자 연말 마무리의 상징과도 같았던 크리스마스지만 올해는 이전과 너무 다른 분위기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는 조용하게 보낼 것을 당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정부에서 부탁할 정도로 크리스마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날로 인식되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본래 예수 탄생을 기리는 기념일이지만, 최근 들어 종교적 의미보다는 연말을 즐기는 문화 일부가 됐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코로나19로 화려하고 시끌벅적하게 보내는 건 어렵게 됐지만, 성탄절 본래의 의미를 되새기며 거룩한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이같은 의미를 담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학일리에 위치한 용인 고초골 공소를 답사지로 택했다. 

고초골 공소는 청년 김대건의 길을 걷다(순례길 스탬프 서벤쩨 장소)로 주목 받고 있다.

기흥역 인근에서 차로 고초골 공소로 출발하니 40여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학일교차로에서 학일2리 마을회관 좌측 길로 천변을 따라 약 200m 가니 ‘고초골 피정의 집(원삼성당)’이라 쓰인 큼지막한 표지판이 보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원삼-승죽 구간을 운행하는 76-7번을 탑승해 학일2리 정거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단 매일 2회씩만 운영되고 기점 기준, 첫차는 오전 9시 50분 막차는 오후 4시 50분이다. 종점 기준으론 첫차와 막차는 각각 오전10시 오후 5시이니 시간에 맞춰 탑승해야 한다.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며칠 전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한 쪽에는 누군가 만든 눈사람이 방문객을 맞아주고 있었다. 눈 위에는 선명한 발자국이 남아 있을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발이 시리도록 추운 날씨로 인해 고초골 공소에서 핍박받은 이들의 심정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추위를 온몸으로 흡수하며 공소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가장 오래된 한옥공소 

고초골 공소 내부 모습.

1891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초골 공소는 수원교구 중 가장 오래된 한옥 공소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근대 천주교가 정착하면서 한옥 건물의 기능과 형태가 변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고초골 공소는 근대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3월 9일 등록문화재 제708호로 지정됐다. ‘공소’는 본당보다 작아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순회하는 구역의 천구교 공동체다.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산 곳으로 함께 기도하면서 신앙생활을 이어나간 마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1820년경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 들면서 생긴 마을이 교우촌이 형성됐다. 이런 가운데 1866년 병인박해로 이곳에 숨어 살던 교인들이 순교했고 마을은 불타 없어졌다. 20년 후 1886년 ‘조선과 프랑스의 조불수호통상조’ 체결로 조선에 선교 자유가 허락됐고 이곳에 다시 천주교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다시 마을이 형성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됐지만, 기도드릴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렇게 마련된 곳이 지금의 고초골 공소다. 

1891년 지어진 이곳은 1900년경 78명의 신자에서 1920년에는 230여명으로 늘어나면서 신앙의 보금자리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소 옆에는 돌을 쌓아 올린 돔을 만들어 마리아를 감싸 놨다. 마리아상 앞에는 나무로 만든 의자가 있는데 마치 한적한 시골을 연상케 한다. 도심에선 만나기 어려운 풍경이어서 그런지 정겹고 아늑했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왠지 소원을 이뤄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작은 초를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린 것 같았다. 나도 두 손을 모으고 코로나19가 종식되길 기도했다.

공소 건물은 현재도 미사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여름철(4~10월)은 공소 경당에서 겨울철(11~3월)에는 주교관 1층에서 매주 화~금요일 오전 6시 30분에 진행된다. 공소 앞에는 오래돼 보이는 종이 있었다. 투박해 보이는 외관은 그동안 여러 풍파를 견디면서 단단해진 관록이 느껴진다. 미사 시간에는 종의 청초한 소리가 들릴까 문득 궁금해졌다. 종소리를 듣고 싶은 이라면, 미사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피정의 집으로 확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마리아상이 평온함을 안겨준다.

2003년 원삼 본당이 설립됨에 따라 고초골 공소 용도가 없어지게 됐다. 이에 원삼본당은 2004년 이곳을 ‘피정의 집’으로 확대해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공소를 중심으로 인근에 있던 폐가를 활용한 곳도 있고 새로 증축한 건물 등을 포함해 총 9곳의 공간이 마련됐다. 피정은 피세정념 또는 피속추정의 준말로 신앙인들이 새로운 쇄신을 위해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묵상, 성찰 등을 하는 곳이다. 이를 통해 성찰하는 이는 영적인 쉼을 얻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취지다. 또 새로운 깨달음과 힘을 받아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공소 주변을 둘러보면 원삼면 고초골이 연고지인 병인박해 순교자를 알리는 안내문과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라는 기도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 안내문과 기도문을 읽다 보면 왠지 모르게 숙연해 지면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게 된다. 이곳저곳 살펴보다 보면 거대한 그리스도상이 눈에 뛴다. 십자가에 매달린 채 양팔을 벌린 그리스도상을 보고 있노라면 별다른 이유 없이 위로받고 구원받은 느낌이 든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130여 년 전 핍박 속에서도 신도들이 예수와 마리아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은 것도 이같은 안식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연말이랑 썩 잘 어울렸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의미를 되새기고 숭고한 이들을 기도하면서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나 코로나19로 모두가 지친 2020년, 몸과 마음의 쉼터가 필요한 이들도 많을 텐데 이곳을 통해 평온함을 온몸으로 느껴 보는 것도 연말을 보내는 좋은 방법일 듯하다.

고초골 공소는 ‘청년 김대건의 길을 걷다’라는 순례길 스탬프 투어 중 세 번째 장소로 스탬프 찍는 재미도 함께 누릴 수 있다. 순례길 명소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니 추위가 누그러지면 고초골 공소 안쪽에 마련된 ‘십자가의 길’도 걸어보자. 추위와 코로나19로 움츠러든 채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고초골 공소 피정의 집 산책으로 조금 더 건강한 몸과 마음을 단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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