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전에 듣는 사람의 주변이나 처지를 생각해 하라’는 말이 있다. ‘말은 자기가 하는 것에 남에게서 듣는 것도 있으니 어느 쪽이건 할 때엔 몇 번 생각해 하라’고 강조하던 어른들의 처세훈도 있다. 이는 듣는 사람의 입장을 두루 살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니 요즘 만나는 나이 들어 뒷전으로 물러난 지인들은 한결같이 “운전 그만 두세요” 하는 애들의 성화가 대단하고 들을 때마다 서운하더라고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말을 하지만, ‘자동차 운전’에 얽힌 말은 황혼길 인생들에겐 심각한 삶의 문제다. 필자 역시 한집에 사는 아내나 떨어져 사는 애들이 찾아오면 “이젠 나이도 많이 드셨으니 자동차 운전대는 잡지 마세요” “운전면허증을 반납하시고 웬만한 곳은 건강을 위해서라도 걸어 다니세요” 한다. 이어 “운전하다 보면 다칠 수도 있고 남에게도 피해를 줄 수도 있어요. 더 크면 아직도 남은 아버지의 여생이나 귀중한 남의 목숨을 주검으로 몰아넣게 돼 천수도 다 하시지 못하게 됩니다” 경고성 걱정을 해준다. 

순간 속으로 “○○○들, 나이가 들었다고 애비가 운전을 잘못해 사고를 내나. 아직도 정신이 말짱한데. 차 운전 않고 이 세상 어떻게 사나? 죽은 목숨처럼 살란 말이냐? 너도 내 나이 돼봐라. 옆에서 이런 말 듣게 되면 너는 뭐라고 대답할래” 하면서 서러움보다 은근히 화도 난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걱정보다 고마움은 멀리가고. 가끔 동승한 사람들에게서도 “이제는 운전솜씨가 옛날 같지 않아요. 운전 감각이 많이 둔해졌네요. 이제 그만 하실 때도 됐네요” 하고 걱정하는 말이 아내나 아들의 하는 말과 같이 고마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의 말에는 ‘내 나이가 어때서’ 하고 역겨워지기도 한다. 

이런 말 모두 나를 아는 모든 사람. 측근이나 가족들의 걱정이 분명하나 고마움은 뒤로 하고 나이 먹은 탓인지 오히려 말하는 사람의 얼굴 위에 고마움이 엉겨 붙지 않는다. 고마움으로 받아들여야 함에도 ‘아직은’ 하고, 마음속에 유보사항으로 남고 있다. 점잖은 말로 수양이 덜된 인간인 탓이라고 자회(自悔)도 가끔 하지만, “어떻게 얻은 운전면허증인데” 하고 어느 시점에 머물면서 그날의 ○○면허시험장으로 돌아간다. 

벌써 반세기 전 일이다. 운전면허시험을 치르기 위해 면허시험집을 열심히 읽고 외우고 혼자서 사지문답을 풀어보고 하면서 닷새를 전력투구해 얻어낸 면허증. 1984년 3월. 이 증을 받은 날 밤에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가슴에 품고서 잠을 자기도 했다. 이후 이 면허증을 보물처럼 간직하면서 운전 경력을 꾸준히 쌓아 때때로 소속된 문인단체의 회장단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가 여기저기 세미나장을 누비다 보니 베테랑 소리까지 들어왔다. 그러함에도 이제 나이 많다는 덕(?)으로 주변과 가족들이 면허증과 이별하기를 권유하니 나이 먹음이 원망스러우며 면허증 소리만 들어도 요즘은 신경이 곤두선다. 

나이가 들면 면허증 자율 반납을 권고하지만 좋게 말해 사회제도가 원망된다. 나이 기준보다 소지자의 정신과 신체결함 상태를 인정해 줬으면, 일률적인 선을 지양해줬으면 한다. 이 실현가능은 어른들의 몫이지만, 103세 고령 운전자의 인터뷰 기사도 생각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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