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의 알록달록한 단풍

강원도 산악지대에 첫눈이 내렸다는 뉴스와 함께 지난해에 비하면 보름 이상 늦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입동 즈음이니 눈이 와도 이상하지 않은데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 것은 언제나 신기하다. 주변에 나뭇잎이 떨어져 바스락거리고, 바람에 몰려 낙엽이 쌓인 곳은 발목이 잠긴다. 하얀 눈밭을 조심스레 밟듯이 낙엽 길을 천천히 밟으니 사각거리는 소리에 기분이 좋다. 함께 산책을 나온 아이가 낙엽이 쌓인 곳을 발로 신나게 차며 뛰어갔다. 바람이 불자 모여 있던 나뭇잎들이 넓은 곳으로 파도치며 밀려 나왔다. “우와~” 소리가 절로 났다. 

떨어진 나뭇잎은 초록색, 연두색, 노란색, 갈색, 주황색, 붉은색 등 그 색이 정말 다양하다. 나뭇잎 두께가 나무마다 다르니 밟히는 느낌이나 소리도 각양각색이다. 간혹 미끄러운 낙엽을 밟으면 깜짝 놀란다. 냄새도 다양하니 낙엽을 모아서 버리기 아까울 정도다. 낙엽 색이 이렇게 다양한 이유는 날씨가 추워지면서 나뭇잎에 있는 색소들이 파괴되거나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초록색을 띄는 엽록소가 파괴되고,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당으로 붉은 색소가 만들어진다. 또 처음부터 있었지만 엽록소 때문에 보이지 않던 색소가 노란색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 정도와 속도가 나무마다 다르니 다양한 색이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단풍나무는 낙엽을 떨구며 가을을 보내고 있다.

붉은 단풍에도 초록색과 노란색이 있고, 계수나무의 노란 낙엽에도 초록색과 갈색이 섞여 있다. 반대로 봄부터 가을까지 항상 붉은색인 적단풍은 초록색 잎을 달고 있다가 가을에만 색깔이 붉어지는 단풍과 비교했을 때 생장이 느리다. 처음부터 한 가지 색소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생장이 느리다는 것은 번식에 불리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연이 추구하는 것은 다양성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다. 같은 것만을 고집하다 보면 결국 사라지니, 다양하지 않더라도 한두 가지 대안은 꼭 필요하다. 

낙엽의 다양한 색을 보면서 내 인생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이 단풍나무가, 무지개나무가 됐다며 까르르 웃었다. 가지만 남아있는 나무 꼭대기를 보며 위부터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도 알아차린다. 윗부분의 앙상해진 가지는 어릴 적 마당을 쓸던 큰 싸리 빗자루를 닮았다. 아이들은 필자의 빗자루 설명에 얼마 전 핼러윈 때 친구가 가져온 마녀의 빗자루를 이야기하거나, 경비아저씨가 낙엽을 쓸 때 사용하는 빗자루를 생각한다. 시대가 계속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가 만든 낙엽꼬치

나뭇잎이 떨어지니 여름 내내 있어도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새 둥지가 모습을 나타냈다. 이미 주인 없는 집이라 어딘가 모르게 정돈되지 않은 것이 빈집 티가 났다. 그래도 어떤 새는 내년에 그 집을 수리해서 쓸지도 모른다. 수리해서 사는 집이 비용도 덜 들고, 더 튼튼하고 좋다. 이미 전 주인이 정남향의 좋은 위치에 가지 높이와 기울기까지 생각해서 지어놓은 집이니, 비가 들이치거나 천적에게 들킬 위험도 적은 아주 좋은 집이다. 새들이 집을 짓고 또 수리해서 쓰는 모습이 사람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나아 보였다. 휑한 가지 사이로 둥지뿐만 아니라 새들의 모습도 더 자주 보였다. 까치, 직박구리 외에도 작아서 보이지 않던 박새, 오목눈이가 예쁜 소리를 내며 가지에서 가지로 날아다녔다. ‘남은 열매 없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모습이다. 

낙엽은 매년 봐도 서글프다고 말하는 지인이 있다.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는 것과 풀이 시들어 없어지는 것을 죽음과 연관해서 생각하기 때문인가? 우리나라 여러해살이식물은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 동물들처럼 겨울잠을 잔다. 겨울잠을 자는 곰이 움직이진 않지만 죽은 것도 아니다. 식물의 앙상하고 쓸쓸해 보이는 모습에서도 그 안의 따뜻한 생명력을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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