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멈춰진 시간>은 1980년대 삼청교육대에서 만행된 인권 유린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피해자들에게는 위로와 치유를 전하고 있다

대한민국연극제 경기도대회 4관왕 올라

어떤 사건으로 강력한 정신적 충격 후 후유증을 느끼게 되면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말한다. 과거 경험했던 위기나 공포에 처하면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으로 드라마나 영화 등에 자주 나오는 단골 소재다. 실제로 트라우마를 겪지 않은 사람이 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온전하게 공감하긴 어려울 테지만, 진심 어린 위로는 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극단 개벽을 이끄는 한원식(55) 연출가 겸 배우는 이런 마음을 담아 <멈춰진 시간>을 무대에 올렸다. 1980년대 국가는 몸, 마음, 정신(3청)을 깨끗하게 하자는 취지로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죄 없는 시민까지 잡아가는 등 인권을 유린했다. 이로 인해 6만여 명의 시민이 잡혀갔고 그 가운데,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심각한 정신적 질환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비극을 담은 연극이 <멈춰진 시간>이다. 이 작품은 제38회 대한민국연극제 경기도대회 대상은 물론 연출상, 연기대상, 무대예술상까지 거머쥐며 4관왕에 올랐다. 이 덕에 좀처럼 웃을 일 없던 용인 연극계에 잠시나마 미소 짓게 하며 활발한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한원식 “피해자들, 연극 통해 치유됐으면” 
삼청교육대가 있을 때 초등학교 6학년 쯤 됐을 시기라고 회상한 한 연출가는 자신이 잘 따르던 지인도 끌려갔단다. 갑자가 사라진 지인은 정신적으로 이상해져서 돌아오게 됐고, 시간이 흘러 삼청교육대라는 비극에 대해 알게 됐다.

“제가 직접 겪은 사건은 아니지만, 달라진 지인을 보고 너무 충격이었죠. 오래 전부터 다루고 싶었던 얘기였는데, 이제야 무대에 올리게 됐네요. 3개월 정도 희곡 작업에 매달렸어요”

그는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기 위해 관련 책자와 자료 등을 찾아보면서 최대한 사실에 입각한 희곡으로 완성시켰다. 삼청교육대 사건을 조사하면서 선은 절대 악을 이길 수 없는 구조임을 깨닫게 된 한 연출가는 이런 생각에 대해 여전히 변함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어렵고 또 무거운 소재를 무대에 올린 이유는 소박하다. 무대를 본 관객은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를 계기로 삼청교육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같은 관심과 공감은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에게 작게나마나 위로가 될 것이라고 한 연출가는 말한다.

“어렵고 힘들지만 저마다의 아기자기한 삶을 펼쳐나가는 소시민을 끌고 가서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삶이 망가지고 피폐해졌지만, 그럼에도 결국에는 삶을 다시 개척하고 살아가게 돼죠”

연극 <멈춰진 시간>을 연출한 한원식 대표는 용인에서 활동 중인 극단 ‘개벽’을 이끌고 있다.

이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이 소소한 희망을 갖고 이들의 삶을 기억하길 바란다는 한 연출가는 피해자들에게 <멈춰진 시간>이 치유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초연작이다 보니 아쉬운 부분도 있는데 더 다듬어서 여러 지역 연극제나 공모 사업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용인에도 신청해 놓은 상태인데, 내년에는 용인시민들 앞에서 공연하길 많은 스태프와 배우들이 바라고 있어요”

올해는 코로나19로 연극계는 물론 문화예술계가 전반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전쟁 속에서도 공연이 이뤄지듯 지금 같은 시기에도 여러 상황을 고려해 공연은 이어가야 한다고 한 연출가는 소망했다.

“많은 예술인이 위축돼 있어요. 예술은 우리 삶을 되돌아보고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끔 만들어주곤 해요. 힘든 상황이지만, 연극이나 공연 등으로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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