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문화유산 이야기1-은이성지

경건함과 성스러움 느껴지는 김가항 성당 자리한 은이골

김대건 신부가 유년시절을 보낸 골매마실 성지에 있는 동상

용인시 인구가 급속도로 늘면서 110만명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다양한 향토문화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잘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용인시는 넓은 크기만큼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의 유물을 품고 있는 지역이다. 

이처럼 다양한 향토문화재는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속 향토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하고, 문화적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로 자유로운 여행이 힘들어진 요즘, 여행지보다 인적도 드물고 문화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향토문화재 답사를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첫 번째 답사지는 용인시 향토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해 지난 3월 13일 용인시 향토유적 제71호로 지정된 은이성지 내 김가항 성당이다.  

◇귀중한 순교사적지 은이성지

2016년 완공된 김가향 성당은 지난 3월 향토유적 제71호로 지정됐다.

은이성지를 첫 번째 장소로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가을이어서였다. 향토문화재만 보러 떠나기엔 이 계절이 너무 짧고 아쉽지 아니한가. 단풍으로 물든 아름다운 풍경까지 곁들이면 은이성지라는 곳을 더 근사하게 추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인구 양지면 은이로를 따라 가 은이교를 건너니 은이성지라고 쓰인 표지석이 보였다. 드디어 은이성지에 도착했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산에는 울긋불긋 총천연색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은이’는 숨어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천주교 박해시기에 숨어 살던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이다. 그러다 보니 꽤나 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한적하고 경건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오롯이 은이성지에만 집중하기에 썩 괜찮은 분위기다. 은이성지 안을 산책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있다. 흰색 건물이 성스럽게 느껴지는 김가항 성당이다. 

오전 11시 전에 도착하니 미사가 곧 시작될 것이라는 안내를 해줬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를 느껴보고 싶어 미사에 참석해봤다. 미사는 화~일요일 오전 11시에 시작되니 관심 있는 사람은 참고하면 된다. 미사가 진행되는 이 곳은 김대건 신부가 1845년 한국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은 성당으로 귀중한 순교사적지로 알려져 있다.

김가향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성 김대건 신부(안드레아 1821~1846)는 조선 땅에서는 처음으로 이곳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고, 체포되기 직전 공식적으로 마지막 미사를 드렸던 곳이다. 한국 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김대건 신부가 성소의 씨앗을 뿌렸던 곳이자, 그 열매가 가장 먼저 풍성하게 열렸던 곳이 바로 은이마을인 셈이다. 

이같은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곳이었지만, 무관심 속에 이쑤시개 공장과 잡초만이 무성한 텃밭으로 한동안 방치돼 있었다. 그런 가운데, 1996년 비로소 본격적인 성지 개발이 시작됐고, 2016년 지금의 김가항 성당이 완성됐다. 

김가항 성당 옆에는 김대건 신부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는데, 가는 길에 묘한 조각물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린 김대건 신부가 세례 받는 모습을 구현한 조형물이었다. 기념관에 도착하니 코로나19로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내부에는 생애 탄생과 성장 과정, 세례, 신학생 선발과 유학 시절 등 김대건 신부의 생애에 대해 전시돼 있다고 은이성지 관계자는 설명했다. 

김가항 성당 옆에 자리하고 있는 김대건 신부 기념관 전경.

은이성지에서 나오면 맞은편에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는데, 십자가의 길 1처를 시작으로 한 바퀴 돌아 내려오면 마지막에 설치된 14처를 볼 수 있다. 조용한 산 속 코스여서 명상하며 걷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마지막 14처 근처에는 김가항 성당 앞에서 본 비슷한 조형물을 있는데, 이 역시 소년 김대건 신부 모습임을 알 수 있다. 두 조형물을 통해 순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마치 수미상관 구조를 나타낸 것 같았다. 

십자가의 길을 걷고 내려오면, 성지순례길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청년 김대건길은 성 김대건 신부를 따라 걷는 순례길로 2000년대 초반부터 매월 넷째 주 토요일 많은 신자들이 모여 이 길을 걸었다고 한다.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까지 가는 길에 험한 고개가 세 곳이 있는데, 성 김대건 신부가 이 길을 넘나들며 미사를 거행하고 사목활동을 이어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는 청년 김대건길은 사색하고 힐링하기에 더없이 좋은 코스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도 적합할 듯싶다. 

◇김대건 신부 유년시절을 보낸 골배마실 성지 

안성 미리내성지까지 이어지는 청년 김대건 길 안내판.

은이성지에서 약 5km 정도 떨어진 골매마실 성지는 향토문화재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은이성지 만큼 귀중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양지파인리조트 안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야 보이는데, 가는 내내 ‘내가 잘 찾아왔나’라는 의문이 들 만큼 끝자락에 있다.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들어가면 골배마실 성지를 발견할 수 있다. 입구에는 자물쇠로 잠가놨지만, 사무실에 연락하면 알려주니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입구에서 다리를 건너 들어가면 이름을 새긴 표지석을 마주할 수 있다. 이는 성 김대건 신부 생가 아래에 묻혀있던 바위를 발굴해 글을 새겨 넣은 것이다.  

골배마실은 예로부터 뱀과 전갈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서 뱀마을, ‘배마실’로 불렸단다. 그래서 인지, 산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이곳 역시 산 안에 있어 상쾌한 공기는 물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첩첩산중에 있는 이곳은 성 김대건 신부가 세례성사를 기다리며 신앙을 키운 곳이다. 또 이곳에서 어머니와 첫 상봉하는 등 유년시절을 보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성지 안에는 옛 고목 몇 그루가 아직도 남아 있을 만큼 청정지역이다. 때문에 반려동물 산책을 비롯해 자전거, 킥보드 탑승 및 흡연 등이 금지돼 있다. 자물쇠를 잠가 놓은 것도 보호를 위해서다. 

깊은 산속에서 숨어 지낸 성 김대건 신부와 그의 가족이 마치 코로나19 시대 속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우리네 삶과 겹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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