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을 가지 못한 연휴가 참 낯설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현명한 방법을 선택한 듯하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엔 여전히 사람들이 많다. 특히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산책을 하고, 공원이나 뒷산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조용히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곧 활기찬 날이 다시 올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가을의 따듯한 햇볕과 시원한 공기는 우리나라의 보물이다. 우리는 계절이 변할 때마다 그 미세하고 연속적인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계절 변화가 없는 곳의 사람들이 평생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쉬는 시간이 길었던 연휴, 아이들과 뒷산에 갔다. 길을 따라, 가지가 넓게 퍼진 밤나무 밑에는 이미 하얗게 벌어진 밤송이가 가득했다. 부지런히 아침 산책을 한 사람들은 좋은 밤을 가져갔겠다. 주위를 살펴보니 떨어진 밤이 꽤 있었다. 밤을 주우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무를 발로 차 흔들어 보기도 하고, 긴 나뭇가지를 주워 털어도 봤다. 높은 가지에 입을 벌리고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밤송이가 여럿 보였지만,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고개를 들어 나무를 쳐다보며 “아빠, 저기~ 저기~”를 외쳤다. 가지를 쳐서 떨어진 것 중에는 아직 익지 않은 초록색 밤송이도 있었다. ‘이걸 어쩌지?’ 생각하는데, 아이들 아빠는 능숙하게 한 발로 밤을 잡고 다른 발의 뒤꿈치로 밤송이를 벗겨냈다. 시골에서 밤송이 좀 까본 솜씨였다. 
 

밤송이 무덤

그런 밤송이의 밤은 아직 껍질이 단단하게 익지 않은 하얀 밤이 들어있다. 손톱으로 벗기면 껍질이 쉽게 까질 정도로 말랑말랑하다. 까서 먹어보니 아이들도 맛있다고 난리다. 이때부터 아이들이 더 밤털이에 재미를 붙였다. 이런 풋밤은 밤나무를 털어보지 않고는 먹을 수 없는 더 귀한 밤이다. 아이들 아빠는 밤을 털고, 엄마는 밤을 까고, 아이들은 새끼 참새들처럼 받아먹었다. 어디든 맛있는 것이 있으면 행복해지나 보다. 이렇게 주운 밤을 이웃사촌에게 건져주었더니 송편 빚을 때 넣어 송편으로 다시 돌려줬다. 멋진 이웃이 있어서 추석에 특별한 이야기가 하나 더 생겼다.

어릴 적 감을 따던 추억이 떠올랐다. 아빠와 할머니는 긴 장대로 감을 따시고, 우리는 장대 끝에 달린 감을 빼서 소쿠리에 담았다. 방금 딴 감이 얼마나 예쁜지 필자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 감의 맛은 어땠는지, 감을 잡았던 손의 느낌은 어땠는지, 그 냄새며, 감을 후루룩하고 들이키듯 먹었던 모든 것이 ‘감’이라는 단어 하나에 다 들어있다. 너무 익은 감은 장대로 비틀다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떨어지는 감을 손으로 받는 묘기를 아빠가 보여주곤 하셨다. 하지만 아쉽게 떨어진 감들도 부지기수다. 할머니는 떨어져서 깨진 감도 ‘아깝다’ 하시며 주워 드셨다. 그때는 그렇게 주워 먹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는데, 지금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밤나무

밤 털기, 대추 털기, 호두 털기, 은행 털기. 하나씩 따는 것보다 한꺼번에 떨어뜨려서 줍는 열매들은 모두 털어낸다. 밤나무는 너무 커서 가지에 올라가서 터는 것이 제맛이다. 후두둑 떨어지는 밤은 머리에 맞으면 많이 아프지만, 그래도 반짝거리는 열매를 보면 배가 부르다. 대추나무는 가지에 가시가 있어서 일일이 따기도 힘들거니와 가지를 세게 쳐서 잔가지가 떨어져야 다음 해에도 열매가 굵게 잘 열린다. 자연스러운 가지치기를 가을에 한 차례씩 하는 셈이다. 요즘 대추나무엔 먹음직스러운 대추가 나뭇가지가 휠 정도로 가득이다. 그래서 대추나무 아래에는 잔가지와 잎이 끊임없어 떨어지고 있다.

높은 가지의 좋은 대추는 올해에도 새들의 차지다. 아이가 “은행은 왜 털어? 은행도 먹어?” 한다. 은행열매가 떨어질 때 은행나무 옆을 지나가면서 냄새에 칠색 팔색하던 아이가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아직도 고소하고 말랑한 은행 맛을 모르는 아이에게 올 가을에는 꼭 맛있는 은행 맛을 보여주고, 면역력도 높여야겠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