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6년 배터시 공원에 세워졌던 갈색기 동상(1910년 철거)

1903년 2월 2일 영국 런던 의과대학교 베일리스는 스탈링과 함께 갈색 테리어종 개의 복부를 절개해서 췌장과 소화액의 분비기전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하고 있었다. 60명의 의과대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실험을 보고 있었다. 실험실의 강아지는 몇 번 움직이는 것처럼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뒤에 앉아있던 두 명의 여학생이 손을 들고 항의했다. 실험동물이 충분히 마취되지 않아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여학생은 실험실에서 쫓겨났으나 얼마 후 자신이 목격한 것을 동물실험 반대 모임에 알렸다.

살아있는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생체실험은 많은 불쾌감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생리학자였던 클로드 베르나르의 동물실험을 비난하며 반대했던 사람이 바로 그의 부인이었다. 베르나르의 부인은 반동물실험 단체를 설립하기도 했다. 영국은 1876년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살아있는 동물 실험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시작됐고,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평소 동물실험에 반대하던 스테판 콜리지는 여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대중 집회를 열어 과학자들이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동물에 심각한 고문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수천 명의 지지자들이 잔인한 동물실험을 규탄하기 시작했다. 콜리지의 연설은 진보신문지인 더 데일리 뉴스를 통해 기사화됐다. 

졸지에 무자비한 동물학살자가 된 베일리스는 분노했고 콜리지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두 사람의 논쟁은 결국 법정 소송으로 이어졌다. 실험동물은 모르핀, 클로로포름 등의 마취제가 사용됐다. 두 여학생이 무의식적인 움직임을 오해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재판에서 진 시민단체는 베일리스에게 5000파운드의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시민단체는 곧바로 모금운동을 벌였고 얼마 후 많은 돈이 모였다. 시민단체는 베일리스에게 배상금을 지불하고, 남은 금액으로 런던 배터시 공원에 동상을 하나 만들었다. 실험실에서 희생된 갈색 개의 동상인데, 명패에 쓴 글은 또다시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1903년 2월 실험실에서 개는 죽음을 맞이했다. 1902년 한 해 동안 232마리의 개가 생체실험을 당했다. 영국 남녀들이여 언제까지 이런 일을 계속하게 두려는가?”

런던 의과대학생들은 동상 명패에 쓰인 글은 거짓이고 모욕이라고 주장하며 동상을 부수기 위해 몰려갔다. 시민단체는 동상을 보호하며 의대생들과 대치했고, 경찰들은 이들을 말리기 위해 동원됐다.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1907년 12월 10일 의대생 1000여 명이 동상을 철거하기 위해 모여 동물보호 시민단체 400여 명과 충돌했다. 수백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반복적인 두 집단의 대립은 막대한 행정비용을 발생시켰다. 견디다 못한 시의회는 1910년 동상을 철거했다.

두 집단의 대립 중에도 런던의대의 베일리스와 스탈링의 연구는 계속됐다. 파블로브의 개 실험으로 신경이 위산과 같은 소화효소 분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다. 두 과학자는 파블로브의 신경이론에 따라서 췌장에서의 역할을 확인하기 위한 동물실험을 하고 있었다. 신경을 절단한 동물의 십이지장에 음식을 넣기도 하고, 신경에 전기 자극을 주기도 했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동물 실험 중에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신경이 손상될 경우 파블로브의 이론대로라면 소화효소가 나오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신경을 제거한 동물 췌장에서는 여전히 가는 관을 통해 소화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뭔가 다른 물질이 췌장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니콜라 힉스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 갈색개 동상(1985)

음식이 장을 자극해 어떤 물질이 만들어져 췌장을 자극한 것으로 생각한 두 사람은 장 내부를 긁어 추출한 물질을 개 혈관에 주사했다. 놀랍게도 음식을 먹은 것과 똑같은 반응이 일어났다. 신경 없이도 췌장 기능이 작동한 것이다. 장내 표피세포에서 어떤 물질이 생성되고, 혈관을 통해서 췌장의 기능을 활성화시킨 것이다. 새롭게 발견된 물질은 분비한다는 의미의 ‘세크레틴(secretin)’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05년 스탈링과 비슷한 시기에 다른 과학자들이 발견한 새로운 물질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활기를 준다는 그리스어 호르모어(hormḗ)에서 딴 ‘호르몬’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세크레틴 이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부신피질 호르몬과 성호르몬 등이 속속 발견됐다. 1921년 캐나다의 동네의사였던 밴팅은 의대생 베스트와 함께 개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추출해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호르몬 발견에는 많은 동물들이 희생됐다. 밴팅 역시 91마리의 개 실험에서 실패했으나 92번째에서 기적적으로 성공한 것이다.

1910년 제거됐던 동상은 75년이 지난 1985년 조각가 니콜라 힉스가 제작한 동상이 다시 세워졌다. 의학적 개념을 실제 확인하는 작업에 인색했던 동양에 비해 실험에 적극적이었던 서구에서는 많은 실험이 진행됐다. 그 과정에 수많은 동물들이 희생됐다. 진리를 탐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귀중한 생명에 대한 존중 역시 중요하다. 지금도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동물 실험이 시행되고 있다. 그런 희생이 우리 안전과 건강을 지키고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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