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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는 '텃밭'
  • 홍은정(생태활동가)
  • 승인 2020.09.0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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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꽃

올 여름은 더욱 기상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이른 폭염이 올 것이란 말에 잔뜩 긴장했지만, 오랜 장마로 더위보다 높은 습도와 싸워야 했다. 기상예보 이래 가장 긴 장마였다. 우중충한 날들을 집안에서만 보내면서 많은 사람이 힘들었다.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자유로운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참 위로가 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장마가 끝나고 걱정했던 텃밭에 가봤더니, 작두콩과 오이를 올렸던 울타리는 넘어가서 이웃 밭을 덮쳤고, 옥수수대도 쓰러져 있었다. 토마토는 습도에 약해서 물을 주지 않아야 한다더니 오랜 물과의 싸움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오랜만의 방문이니 당연히 바랭이 친구들이 정글을 이루고 있었다. 부추, 민들레, 아스파라거스, 당귀, 미나리 같은 다년생 식물과 아직 수확하지 않은 고구마만 남기고 밭을 갈아엎었다. 이제 가을을 준비해야 하니 퇴비도 충분히 뿌렸다. 굼벵이와 지렁이, 개미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3일 뒤, 좀 더 늦기 전에 무씨를 뿌리고 배추를 심었다. 열무도 한 번 더 씨앗을 뿌렸다. 열무는 올해 들어 세 번째다. 벼 3모작은 들어봤지만 열무를 세 번이나 수확할 수 있는지는 농사를 지으면서 알았다. 
 

텃밭에서 잘 자라고 있는 열무

열무는 ‘여린 무’에서 나온 말인데, 예전에는 무씨를 뿌리고 어린 무 잎을 잘라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열무의 인기가 많아져서 따로 열무 씨를 개량해 판매한다. 남쪽지역에서는 열무 그대로 쌈을 싸서 먹는다는 것을 이웃집에서 듣고, 푸짐하게 쌈을 싸 먹었더니 아리고 매운 맛에 살짝 놀랐다. 다음날 만나서 물어보니 원래 그런 맛으로 먹는 거라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용감하게 덤볐던 농사 새내기는 이렇게 열무의 매운맛을 보고 말았다. 열무김치, 열무 물김치 모두 그 특유의 새콤하고, 쌉사름한 맛이 다른 김치와 차별적이다. 

여름엔 열무국수를 말아먹거나 보리밥에 비벼 먹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것 같다. 아이들 아빠는 강원도 시골 출신인데, 항상 고추장 푼 물에 열무김치를 말아서 밥과 같이 먹는다. 그 지역에서 주로 먹는 음식이라며 스스로 열무고추장냉국이라고 부른다. 당신이 먹을 때마다 권하긴 하지만, 아직 빨간 국물에 김치와 밥이 섞여 있는 모습이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그도 그 진정한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필자와 아이들을 보고 많이 안타까워한다. 

특히 여름 텃밭에 갈 땐 아침 일찍 준비하고 나가자고 다짐하지만, 아이들과 준비하다 보면 해가 뜬 시간을 피할 수 없다. 땀이 비처럼 내린다. 처음엔 아이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시작한 텃밭인데, 지금은 정작 어른들이 마음에 휴식을 찾는 곳이 됐다. 몸을 쓰는 일을 고되게 하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런 곳에서 먹을 것도 얻고, 자연공부도 하고, 딱딱한 바닥을 벗어나 흙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텃밭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아직도 밭에서 싱싱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고구마다. 하지만 고구마를 볼 때마다 그 안에서 튼실하게 자라고 있을 박각시나방 애벌레를 생각하면 고구마줄기를 꺾는 것이 약간 망설여진다. 그래도 맛있는 고구마줄기볶음을 먹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용감한 엄마가 될 수 있다. 가족이 모두 주방에 둘러앉아 고구마줄기를 벗기는 것도 즐겁다. 아이들도 고구마 줄기를 꺾어서 껍질을 벗기는 솜씨가 날로 늘고 있다. 봉숭아물 대신 고구마물이 든 고사리 손도 너무 귀엽다.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그 안에서 자기 역할을 찾아 묵묵히 허리를 숙이고 해내는 것을 가족 모두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홍은정(생태활동가)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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