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뭇가지에서 자라는 버섯

끝이 보이지 않던 기나긴 장마가 드디어 끝났다. 태풍이 뒤를 이어 달려왔지만 햇빛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작은 시골 마을도 장마로 한바탕 난리가 났더랬다. 집 앞 논에 물이 차서 벼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황토 빛깔 물로 가득 찼다. 소 먹이로 주려고 지난해 가을 추수 후 말아둔 마시멜로-동네 아이들은 건초더미를 마시멜로라 부른다- 건초더미는 나뭇잎마냥 물에 둥둥 떠서 수로를 막아 어이없이 재해를 남겼다. 계곡에서는 갑자기 불어난 거센 물살에 바윗돌들이 천둥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니 과일은 물에 불어 제맛을 못 내고, 텃밭에 심어 놓은 농작물들은 비실대고 있다. 많은 비로 병충해를 입은 고추는 손만 대도 우수수 떨어진다. 다들 그렇게 큰 비로 맥을 못 추고 있다.

이 와중에 마을 앞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버섯을 따려는 사람들이다. 채취한 버섯이 위험하다고 뉴스에서 얘기하지만 무시하고 다닌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버섯이 약 1900여 종 이상 된다고 하는데, 그중에 먹을 수 있는 버섯을 구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괜한 호기로 함부로 버섯을 채취하면 안 될 일이다. 필자도 버섯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다. 삼십 년 전쯤이니 그때는 산에서 버섯을 따는 게 흔한 일이었다. 초등학생 아이들도 산에서 놀다가 버섯을 따기도 했다. 
 

죽은 나뭇가지에서 자라는 버섯

어느 여름날도 여느 때처럼 장마가 지난 후 아빠가 산에 가서 버섯을 따오셨다. 여러 종류의 버섯이 있었지만 기억이 나는 건 독특한 모양의 싸리버섯뿐이다. 싸리비 모양을 닮아 ‘싸리버섯’이라고 불렀는데, 빗자루 모양보다는 산호초를 닮았다는 편이 더 맞을 듯싶다. 아빠가 채취해온 버섯을 엄마가 맛있게 찌개로 끓여주면 그날은 별미를 먹는 날이었다. 유난히 싸리버섯 찌개를 좋아했는데, 그때 얼큰하고 쫄깃한 식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아뿔싸! 배탈이 났다.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고생했다. 싸리버섯의 독이 덜 빠져서 그러지 않았을까. 그 후론 자연에서 채취한 버섯을 먹지 않는다. 버섯은 오로지 농사지은 확실한 것만 먹는다. 내 몸을 담보로 모험을 하고 싶진 않기에…. 

버섯은 식물일까?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순간 당황한다. ‘숲에서 자라고 움직이지 않으니 당연히 식물 아닌가요?’ 하는 눈빛을 막 쏘아댄다. 혹시 초록색 버섯을 본적이 있으신가요? 버섯은 엽록소가 없다. 초록색 버섯이 없는 이유다. 엽록소가 없으므로 광합성을 할 수 없다. 그러니 버섯은 식물이 아니다. 버섯은 균류로 분류된다.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한다. 버섯은 다른 동물이나 식물에 붙어 영양분을 흡수한다. 버섯은 1년 중 대부분을 땅속의 균사로 살고 있다. 우리가 버섯이라고 부르는, 먹거나 산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자실체라고 한다. ‘자실체’는 식물로 치면 꽃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식물의 꽃이 잠시 피었다 열매 맺고 사라지듯, 버섯도 마찬가지다. 1년 중 대부분을 땅속의 균사체로 지내다 그 1년 중 잠깐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해 자실체를 형성해 포자를 번식시킨다. 

버섯은 죽은 나무나 동물 사체, 떨어진 나뭇잎 등에서 주로 서식하면서 식물의 주요 성분인 셀룰로오스와 리그닌을 분해한다. 생태계의 분해자이다. 버섯을 ‘숲의 청소부’라 부르는 이유다. 사람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는 예쁜 꽃과 나무처럼 멋진 화분이나 아름다운 정원이 아니라 스스로 낮은 곳을 자처한다. 몇 년 전 한 도시에서 쓰레기를 수거해가지 않아 혼란을 겪었던 적이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던 환경미화원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다. 버섯이 자라지 않으면 숲 생태계의 순환고리 또한 끊어질 것이다. 그것이 독이 있든 없든 간에 우리 삶의 연결고리 중 하나인 것은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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