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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꽃밭
  • 이나경(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생태활동가)
  • 승인 2020.06.1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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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변에 핀 개양귀비꽃

유월의 공기는 새벽임에도 온기가 감돈다. 집을 나서 오랜만에 새벽 분위기를 한껏 즐기며 탄천 산책에 나섰다. 달뿌리풀들이 제법 높게 자라 강변을 풍성하게 했다. 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도 얼른 한 몫 거들었다. 그곳에는 엄마 흰뺨검둥오리가 태어난 지 얼마 안돼 보이는 아기오리들과 함께 물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조금 더 하천가를 따라 걸어가면 왜가리 한 마리가 조용히 강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언제쯤 물고기 잡기에 성공할까? 탄천을 다닐 때마다 궁금하다. 

버드나무에 무당벌레 애벌레와 번데기, 성충들이 참 많이도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곳에는 진딧물도 많다. 무당벌레들은 애벌레와 성충 모두 진딧물을 먹이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엄마 무당벌레가 진딧물이 많은 이 버드나무에 알을 낳았을 것이다. 그러면 진딧물은 무당벌레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항문에서 나오는 단물을 개미에게 주고 개미로 하여금 무당벌레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게 한다. 그래서 진딧물이 많은 곳에는 개미들이 많고, 또 그곳에는 무당벌레 애벌레와 번데기, 성충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다시 탄천을 따라 걸었다. 강변 한 곳에 붉은 개양귀비가 피어 있었다. 작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디서 씨가 날아 왔을까? 5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개양귀비에 나는 몹시 설렜다. 멀리서 봤을 때 다른 꽃들과 조화로움에,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얇은 꽃잎의 열정적인 붉은색과 그 속의 짙은 흑갈색의 아름다움이 나를 매료시켰다. 수레국화와 함께 어우러져 도로변을 수놓으면 항상 모네의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언덕’이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흰 구름과 파란하늘이 어우러진 하늘 아래 빨간 양귀비꽃밭 사이로 어린 아이와 양산을 든 귀부인이 걸어오는 모습은 개양귀비 꽃이 피는 계절마다 생각나는 그림이다.

그런데 이제 모네의 작품보다 더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시골 친정엄마의 꽃밭이다. 내가 나고 자라고 시집오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그동안 엄만 아빠와 함께 농사를 지으셨다. 그때 우리 집은 마당이 꽤 넓은 시골집이었다. 근데 집을 새로 고치고 마당은 바뀌기 시작했다. 대문 바로 앞 마당은 상추와 고추, 파, 그리고 덩굴장미가 자라는 텃밭이 됐고, 마당에는 잔디가 깔리고 소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마당에서 본채로 들어오는 긴 담장을 따라 엄마의 꽃밭은 쭉 이어진다. 라일락이 향기 가득한 꽃을 피우고 나면, 모란이 크고 우아한 꽃잎을 터뜨린다. 그러면 앞 다퉈 엄마의 꽃밭에서는 개양귀비가 붉은 자태를 가느다란 꽃줄기 위에서 터뜨린다. 

세상에 엄마는 어떻게 저렇게 개양귀비 꽃을 크게 키우셨을까? 엄마의 개양귀비 꽃은 유달리 크다. 어떻게 키웠는지 궁금했다. 엄마의 대답은 정성과 애정이었다.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벼를 찧고 나온 왕겨를 듬뿍 주고 거름도 주고, 그러면 무럭무럭 자란단다. 이제 농사일을 하지 않는 엄마의 관심은 텃밭과 꽃밭으로 돌아섰다. 그 꽃밭과 텃밭은 엄마의 관심만큼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엄마가 말하길 개양귀비 씨가 너무 많아서 문제란다. 올해 엄마는 손주를 돌보러 서울로 올라오셨다. 
 

모네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언덕>

“엄마 양귀비꽃은 어떻게 하셨어요?” 라는 내 질문에, 씨가 너무 많이 생겨서 아까운 꽃을 자르고 오셨단다. “왜요?” 다른 꽃들도 자라야지 하신다. 

욕심을 다 드러내지 않고 다른 꽃들을 위해 조금 양보해 주는 미덕이 엄마의 꽃밭에는 꼭 필요한가 보다. 그렇다. 엄마의 꽃밭에는 개양귀비 말고도 꽃잔디도 자라고 자주달개비도 예쁘게 꽃을 피우고, 백합도 국화도 계절을 이어 꽃을 피운다. 그러면 꽃들의 짙은 향기에 이끌려 꿀벌도 호랑나비도 제비나비도 호랑꽃무지도 찾아와 푸짐한 식사를 한다. 엄마의 꽃밭은 엄마의 마음뿐만 아니라 곤충들에게도 항상 풍요로움을 선물한다.

가고자 마음먹었던 곳까지 다 왔다.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나의 바쁜 일상을 살아야 한다. 오는 길에 보니 풀베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쑥쑥 자란 달뿌리풀들도 베어지고 이제 수줍은 듯 꽃을 피운 개망초도, 꿀벌들이 많이 찾아오던 토끼풀도  베어지고 있다. 아깝다. 하지만 어쩌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즐기기 위한 또 다른 배려와 양보가 아닐까? 베어진 풀들에서 전해지는 풀향기가 참 좋다. 오늘 하루 나도 누군가에게 양보와 배려를 할 수 있는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야 겠다.

이나경(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생태활동가)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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