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꽃

텃밭은 집에서 가까워야 한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밭작물은 정말로 주인이 얼마나 자주 들여다보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걸어서 15분정도 거리인 필자의 텃밭은 다행히 풀이 무성하지 않다. 그렇다고 풀을 모두 뽑지도 않는다. 숲과 들에서 이름을 불러주었던 식물들이 텃밭에서 홀대받는 것이 좀 안쓰럽기도 하고, 맨땅이 고스란히 들어난 모습은 자연을 배우는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아주, 닭의장풀, 질경이, 갈퀴덩굴도 꽃이 예쁘게 피는 들풀인데, 수확하는 데 지장이 없다면, 옆 이랑에 불편을 주지 않는다면 조금은 애교로 남겨둔다.

운 좋게도 이곳 텃밭 사장님은 친환경주의자이면서 로맨티스트이시다. 텃밭 입구에는 작은 정원과 쉼터가 있는데, 포도나무, 감나무, 단풍나무, 향나무와 장미, 불두화가 있다. 특히 장미나무는 2m가 넘는 큰 나무로 지금 핑크색 꽃이 가득 피어서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5월엔 모란과 마가렛이 피었고, 6월을 알리는 붓꽃, 라벤더, 수레국화, 금계국이 정원을 화려하게 만든다. 아직 피지 않은 접시꽃, 부추꽃도 기대된다. 봄부터 계속 피는 괭이밥은 너무도 소담하고 예쁘다. 밭두렁에는 캐모마일이 가득하다.

지난주에는 누군가가 캐모마일로 차를 만들려고 꽃을 수북이 따서 쉼터 테이블에 올려놓았는데 너무 보기 좋았다. 여기저기 캐모마일이 피어있는 밭을 구경하고 있으면 밭에서도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느끼게 된다. 주변에 흔하디흔한 민들레도 여기에선 대접을 받는다. 웬만한 밭에서는 여기저기 싹을 틔워 불편한 존재일 텐데, 이곳에서는 오랫동안 자라서 포기가 상당한 민들레가 많다. 그래서 텃밭을 함께 쓰는 동료들도 사장님을 닮아 민들레 몇 포기에 신경 쓰지 않고 함께 키운다. 덕분에 흰민들레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꽃이 많으니 꿀벌도, 나비도 많다. 그러다 보니 열매를 맺는 식물도 많고, 사람들은 그것을 따서 내년에 다시 심을 준비를 하기도 한다. 이곳에도 숲과 들에서 느끼는 평화로운 조화가 있다. 일방적으로 땅과 하늘의 힘을 가져오는게 아니라 서로 도와주고, 취하고, 나누는 것이 생태계와 비슷하다.

수레국화

필자에게 텃밭에서 하는 일은 노동이면서 동시에 힐링이다. 움직인 것만큼 눈에 보이는 보상과 도시에 사는 우리에겐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이상의 보상이 또 있다. 지혜로 무장한 인생선배들을 만나게 되고, 자연의 순리를 알게 되며, 기다리는 것이 시간낭비가 아니라 준비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주고받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게 해준다. 주말엔 텃밭에서 바로 딴 채소로 건강한 자연밥상을 만드는 행복을 준다. 키운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도 내 삶의 기쁨 중에 하나가 됐다. 

여름이 오면 우선 감자를 캐고, 옥수수를 따고, 꽃대가 올라온 쌈채소를 새롭게 보충할 것이다.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도 따서 먹고, 고구마 줄기도 꺾어서 볶아 먹을 수 있겠지. 가을엔 배추, 고구마를 거둬들여서 겨울을 풍성하게 보내고, 올해 처음 심은 작두콩도 겨우내 뜨거운 물에 우려 차로 마실 것이다. 농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아니면 귀찮아서, 시간이 없어서 텃밭을 생각해 보지 못한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는 것도 좋다. 처음에는 한 것 없이 시간이 잘 간다. 조금 지나면 일하는 시간보다 지켜보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수확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 다음엔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키워서 먹는 것이 자연스러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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