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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늦은 아침의 숲
  • 이나경(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생태활동가)
  • 승인 2020.05.1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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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홍 잎에 붙어 있는 자벌레

5월 비온 다음 날의 늦은 아침, 여유롭게 숲 산책에 나섰다. 풀잎에 방울방울 맺힌 빗방울에 등산화가 조금씩 젖어 들어갔다. 4월 숲이 어린잎들로 연둣빛이었다면, 5월 숲은 이제 부지런히 자란 잎들이 초록빛을 띠기 시작하며 숲은 드라마틱하게 변할 준비를 시작한다. 4월 숲에는 잎이 나기 전 피기 시작한 생강나무, 진달래, 올괴불나무, 벚나무들이 있었다면, 5월 숲은 초록의 잎과 함께 어우러지는 꽃들이 한가득이다. 연분홍 철쭉이 마음을 설레게 하더니 이제 향기 짙은 때죽나무 꽃망울이 곤봉처럼 매달려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숲에서 작년에 매달아 두었던 새둥지에는 언제 알을 낳았는지 털도 나지 않은 아기 새들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만 쫙 벌린다. 먹이를 찾으러 자리를 비운 엄마 새가 돌아 왔다고 생각했나 보다. 

지금 숲은 아직 두꺼워지지 않은 넓은 나뭇잎을 먹으려 나뭇잎마다 숭숭 구멍을 내고 있는 애벌레 세상이다. 공원의 영산홍 잎에도 조금 자란 자벌레, 조금 더 자란 자벌레, 좀 더 많이 자란 자벌레, 이제 제법 큰 자벌레들이 하얀 털이 부슬부슬한 영산홍 잎을 먹고 있었다. 영차 영차 자벌레들이 자로 잰 듯 기어가는 모습은 참 귀엽고 신기하다.

숲으로 걸음을 옮겼더니 한 그루 외로이 서 있는 보리수나무가 보였다. 잎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잎 뒷면이 은백색으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 예쁜 잎들도 애벌레들을 피해갈 수는 없었나 보다. 애벌레가 갉아먹어 예쁜 구멍이 난 이파리, 자신의 입에서 실을 뽑아 잎을 반으로 접어 그 속에 살고 있는 애벌레집도 많이 보였다. 
 

잎말이나방 애벌레

애벌레가 정말 좋아하는 나무는 참나무인 듯했다. 참나무 잎은 온갖 애벌레들의 밥상이다. 자로 잰 듯 몸을 구부려 기어다니는 자벌레, 자랄수록 화를 더 많이 내는 애벌레, 커서도 여전히 순한 애벌레, 색깔이 잎 색깔과 같아 얼른 보면 눈에 띄지 않는 연둣빛 애벌레, 나무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갈라진 틈사이로 줄기 색과 똑 같은 애벌레들이 여기저기 꼭꼭 숨어 있었다. 

다른 잎에는 털이 북실북실한 독나방애벌레들이 그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다. 거기다 참나무노린재들의 약충들도 참나무 잎 뒤쪽에서 쪽쪽 참나무 즙을 빨고 있었다. 그 어느 이파리에는 쌍살벌 한 마리가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있었다. 비가 온 다음이라 그런지 지은 벌집에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또 다른 참나무는 애벌레가 눈 똥들이 한가득이었다. 잎말이나방 애벌레들이 말아놓은 잎들도 참 많았다. 여기저기 애벌레들에게 먹힌 잎에도 참나무는 불평하지 않는다. 아마 애벌레와 곤충들에게 내어 줄 잎마저 넉넉히 만들어 놓은 인심 좋은 나무이리라.
 

곤줄박이 새끼

애벌레를 좇던 시선을 돌리니 보라색 꽃망울의 붓꽃이 꼿꼿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미나리냉이의 하얀 꽃들이 계곡을 수놓고 있었다, 등산화뿐 아니라 양말까지 젖어 들어갔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딱따구리의 드릴링 소리가 계속 들렸다. 엄마 새들이 참 바쁜가 보다. 딱따구리 엄마도, 곤줄박이 엄마도 새끼들에게 먹일 애벌레를 찾느라 몹시 바빴다. 그 엄마 새의 노고로 아기 새들은 무럭무럭 자라 이 숲을 기운차게 날아다닐 것이다.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참나무 잎들은 더 두꺼워지고, 잎이 두꺼워지기 전에 애벌레들은 먹고 또 먹어 번데기가 되고 건강한 어른벌레들로 자랄 것이다. 그러면 나무들은 더 힘차게 물을 빨아올려 더 짙은 초록 잎이 된다. 애벌레에게 양보했던 잎들에 아랑곳하지 않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이며 여름 숲의 짙은 녹음을 우리에게 선물할 것이며, 여름 폭우와 태풍을 이겨낼 당당한 모습으로 우뚝 설 것이다. 또한 가을 도토리를 찾는 다람쥐에게 내어 줄 열매를 만들 것이다. 5월의 숲 참나무는 자신의 잎을 먹는 애벌레들을 불평하며 내쫓지 않고 넉넉히 잎을 만들어 두는 인심 좋은 주인이다.

이나경(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생태활동가)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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