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배우는 것 중요” 조언도

흔히 농업을 ‘생명산업’이라고 한다. 생명과 직결되는 식량을 제공하는 1차 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업에 대한 미래는 녹록치 않다. 고령화하고 있는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서 도시에서만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에 대한 희망을 보고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하거나, 부모가 하고 있는 일을 이어받아 농사를 업으로 하고 있는 젊은 농민들이 있다.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도농복합도시 용인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있는 청년농부들을 만나 농업을 이야기하는 지면을 마련한다. /편집자
문종진 대표가 고무나무 지주대를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젊어서 서울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열심히 하고 잘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군요. 열심히 한 만큼 대가를 받을 줄 알았지만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컸어요. 귀농을 결심한 이유에요. 아직 수익은 많지 않지만 만족해요.”

2014년 용인 남사에 정착한 귀농 6년차 문종진(41) 명문농원 대표는 30대 중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귀농을 한 경우다. 20대 때부터 조경설계와 가든, 화훼장식 관련 사업을 하던 문 대표는 사람한테 시달리는 게 싫어 귀농을 선택했다. 차분하고 자연을 좋아하는 성격에 맞기도 했지만, 사업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아웅다웅 싸우는 데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심신이 지쳐갔기 때문이다. 

2010년 귀농을 결심하고 곧바로 국립 한국농수산대학에 진학했다. 3년간 귀농을 위한 공부도 있었지만 쉬면서 정비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과 대출을 받아 남사에 땅을 구입하고 하우스를 지었다. 관련 업종에서 사업을 한데다 3년을 준비했지만 현장은 달랐다. 대개 귀농·귀촌인들이 흔히 겪는 텃세 때문이다.

“아는 분들도 있고 해서 용인을 선택했는데, 텃세가 있더라고요. TV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가까운 이웃들이 힘들게 하기도 했어요. 정착 초기에는 30~40년 살아온 원주민들께서 주민으로 인정하지 않아 대동회에도 참석하지 못했어요.”

4~5년 주민들과 어울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문 대표를 마을의 한 구성원으로, 주민으로 받아들이기까지 5년 가까이 걸린 것이다. 도시만큼은 아니지만 사람과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농촌에 정착한 문 대표에겐 힘든 시간이었다. 화훼라는 특성에서 오는 어려움도 문 대표에겐 고민거리 중 하나다. 화훼 품종이 워낙 다양한 데다 대부분 소농이다 보니 이웃 농장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딸기처럼 단일 작목은 협업이나 공동생산이 가능하지만 화훼는 100농가에서 100가지 품종을 생산할 정도로 다양하기 때문이란다. 코로나19로 졸업과 입학, 각종 행사가 줄 취소돼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절화 생산 농가가 많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청년 창업농에 선정돼 2018년부터 3년간 생활비 지원을 받고 있는 바우처 제도는 문 대표에게 단비와 같다. 하지만 시와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지원을 받고 있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다. “귀찮은데다 경영장부나 영농일지 작성이 도움은 되지만, 자본도 적고 한 두 명이 농사를 짓고 있는 입장에 120시간 교육을 이수하라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하루가 귀한 귀농한 청년 농부에게 1년에 한 달가량 농장을 비우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용인시 등 행정기관과의 소통 기회 부족이나 담당 공무원의 잦은 교체도 아쉽기만 하다.

귀농 6년차에 접어든 문종진 대표는 귀농을 꿈꾸는 젊은 청년들에게 현실적인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적은 자본으로 귀농을 하려면 경기도가 아닌 땅값이 보다 저렴한 곳에서 하고, 클러스터 단지처럼 배우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는 게 좋을 듯해요.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만으로 무작정 뛰어들지 말고, 현장에서 배우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3년의 귀농 준비기간, 귀농 후 3년 간 고생한 선배 귀농인 문종진 대표가 청년 농부를 꿈꾸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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