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TV를 시청하는데, 누군가 나와서 하는 말이 “선진국은 길거리에서 장애인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않다. 왜 그럴까? 이건 장애에 대한 인식 차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은 특별한 사람이고 선진국에선 다른 사람과 똑같은 시민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나에게 큰 울림이 되었고 이후 진로를 결정함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사회복지사(평생교육사)지만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을 기반으로 한 발 한 발 내딛기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장애인 대상의 업무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장애인복지서비스 분야에 대해서 열심히 배우고 있다. 특히 장애 유형이나 주어진 상황, 사람에 따라 제공하는 서비스가 달라서 되도록 많은 사례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찾은 곳이 처인구에 있는 사단법인 반딧불이(구 반딧불이문화학교)였다.

전국 어디에서도 하지 않는 장애인문화교육사업을 운영하여 그 결과물을 지역사회에 공연이나 전시로 환원하는 것이 너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나도 직원으로서의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여기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공연이나 발표회로 보여주는 시설은 물론 많다. 그러나 2003년 6월 설립하여 오롯이 장애인의 창작욕구와 공연예술을 매개로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상호교류를 통해 우리 모두의 삶은 존중받아야 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

흐르는 물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처럼, 트렌드에 맞게 프로그램 변화에도 심혈을 기울여 장애인들이 수동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주체가 되어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청소년발달장애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는 정말이지 나이만 먹은 어른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지체장애로 휠체어를 타는 이용자(장**)가 농악을 한다는 얘기에 지체장애인이 어떻게 북을 치고 장구를 치겠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대신 해주는거겠지 그런데 수업시간이 다가오니까 누가 시키지않아도 의자에 방석을 겹겹이 쌓아주고 치기 편하게 커다란 북을 갖다 주며 높이를 맞춰주는 동생들, 점심시간이 되면 시각장애 이용자(오**)의 반찬을 챙겨줘야 하는 옆자리에 서로 앉으려고 번호를 정하는 모습,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어요. 제가 할게요’라며 오히려 우리가 내민 손을 부끄럽게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언젠가 자기 용돈을 아껴서 구매한 훌라후프와 배드민턴 셔틀콕을 친구들을 위해서 기부하겠다는 말에 저의 이기심을 반성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같이, 함께” 라는 진심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 반딧불이 가족들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좋은 것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챙기고, 힘든 건 누군가가 대신해줬으면 좋겠고, 편한고 좋은 건 내가 하고 싶고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뽐내고 싶어하지 않은가!

반딧불이 문화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이용자가 성인이 되어 취업하고 교장선생님과 직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건네는 음료수 한 병에 ‘내가 정말 받을 자격이 있나?’ 반성하게 되고, 남들 앞에서 주눅이 들어 말 한마디 못하던 아이가 공연봉사 무대에서 어르신들과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에 새삼 놀라기도 하였다. 성인으로 형, 누나가 되어 청소년 동생들 수업시간에 자원봉사 하러 매일같이 오는 이용자들도 있다.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니터, 키보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등 많은 부품이 필요하다. 여기서 나사 하나만 빠져도 그 컴퓨터는 불량품이 된다, 아무리 좋은 부품으로 채워도 작은 나사 하나 때문에 불량컴퓨터가 되는 것이다. 나의 욕심일지 모르지만, 난 그 작은 나사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도 그렇다. 아무리 좋은 문화시설과 유명한 식당, 멋있는 공원이 많다고 그곳이 살기 좋은 지역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역주민 모두가 행복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고 주민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살기 좋은 지역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민 모두(장애인을 포함한)가 존중받아 살기 좋은 ‘사람중심 용인시’이고, 장애인의 생활향상과 사회보장을 위한 역할을 18년 동안 수행한 곳이 바로 반딧불이문화학교라는 것이다.

올해로 사단법인 반딧불이 (구 반딧불이 문화학교)가 방년 18세가 되었다. ‘방년’은 20살 전후의 한창 젊고 꽃다운 나이를 말하는데, 반딧불이도 그야말로 한창 분발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한 해인 것이다. 그런데 의기투합하여 앞으로 나아갈 시간도 모자란데, 우리에게 청천벽력같은 위기가 찾아왔다. 용인8구역 재개발로 현 부지가 철거되어 이전을 해야 한다. 오죽하면 집 없는 설움이라는 말이 있을까! 방 몇 칸짜리 집을 구하는 거면 뚝딱 구하겠지만, 여러 개의 강의실과 사무실이 필요하여 발품을 팔아가며 많은 건물을 알아보지만, 그때마다 힘이 빠지고 막막하기만 하다.

몇몇 건물주는 장애인들이라고 입주 자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여 씁쓸했던 적도 있었고, 엘리베이터와 장애인편의시설(화장실, 경사로 등)을 챙기면 장애인들이 위험하게 왜 나오냐는 시선도 받았다. 장애인이라고 아무거나 배우고 집밖에 나오지 말라는 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게 화가 났다. 여태껏 했던 교육사업으로 마음의 부자이면 무슨 소용이 있나! 이럴 줄 알았으면 돈 버는 사업을 해서 이사할 집 걱정 안 하고 단박에 이사할 수 있을 텐데.

다들 돈 안 되고 힘들어서 꺼리는 일이지만 지금까지 용인시의 아낌없는 지원이 있었기에 반딧불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하루하루 날짜는 다가오고 머무를 공간이 없어서 이 모든 것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답답하기만 하다. 즐거운 배움, 함께한 나눔, 행복한 삶을 향해 우리의 길을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

작년 11월에 용인시장 면담 때 100여 통의 손편지를 담은 편지함을 시장님께 전달했었다. 장애인 이용자, 이용자 가족, 강사, 직원, 지역주민들까지 한 줄 한 줄 꾹꾹 눌러 쓴 손편지에 절실함이 담겨서 눈시울이 뜨거웠고 평생교육사라는 직업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했었는데 이전을 하지 못하면 그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는 글쓰기반 이용자(강**)는 평소에 친구가 없어 심심했는데 이곳에 오면서 친구가 생겨서 너무 좋았고 열심히 글을 써서 윤동주 시인 만나는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이 사람에게 지역사회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편견없이 사귈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아니면 반딧불이 대신에 이 꿈을 이뤄줄 수 있을까? 이런 역할을 반딧불이 문화학교가 해왔고 앞으로도 지속해서 할 것이다.

지적장애인 박** 이용자의 보호자는 여러 시설의 문을 두드려봤지만 번번이 좌절했고 그러던 중 반딧불이를 알게 되었고, 이용자가 심리적 안정과 사회성을 기르며 너무나도 즐겁게 생활하여 가족 모두가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편지내용 그대로를 옮기자면 지금까지 용인시 장애인들에게 끼친 반딧불이의 지대한 영향력은 장애인 가족들에겐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크나큰 선물과 같다고 했다. 만약 반딧불이가 없어진다면, 이 가족에게 이런 선물을 누가 해줄까요? 지역사회에서 이 가족의 행복을 계속해서 지켜줄 수 있을까요?

어렸을 때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라고 주문을 외우면 튼튼한 모래집이 생겨났었다. 요즘은 반딧불이 가족들의 간절함을 모으고, 장애인 이용자들의 꿈과 희망을 담아서 주문을 외운다. “두껍아 두껍아 새집 다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행복할 수 있도록 반딧불이 새집을 하루빨리 찾아다오”

장애인을 얘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말이 형평성과 차별이다. 어떤 것이 먼저이고 어떤 것이 중요한지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제가 보기에 문제의 해결책은 그 벽을 허물면 되는 것이다. 소신 있게 공익을 생각하여 결정한다면 제도와 절차상의 난관은 결과를 얻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인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장애인의 장애가 아니라, 이를 가로막는 편견의 장애물이다. 형평성과 차별이라는 단어에 가려진 편견이라는 장애물을 허물지 않으면 지역사회의 복지 또한 한쪽으로 치우치고 기울어질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단체로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여럿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처럼 이제는 지역주민들과 멀리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부디 반딧불이에 여러분의 빛을 모아주세요. 용인시에서 더 밝게 더 오래 빛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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