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동이 잘린 벚나무 싹

모든 대화의 주제가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된 지 한참이다. 반갑지 않은 손님과 함께 한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성큼 눈앞에 다가왔으나, 온 맘을 다해 봄을 즐길 수 없는 현재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가까이에 산이 있어 산책할 수 있는 필자는 그나마 심심하지 않게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자위해본다. 

보통의 봄이라면 봄맞이 대청소를 하거나 겨울옷을 정리해 세탁소에 맡기거나, 잘 빨아 옷장에 넣고 가볍고 아름다운 봄옷으로 준비할 터였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좋은 핑계 덕에 겨울옷은 그대로 옷걸이에 걸려있다. 외출을 하지 않으니 덩달아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중이다. 이런 나와 다르게 또 누군가는 열심히 봄 단장을 하며 부지런을 떨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어제 오른 산의 모습은 꼭 우리와 닮아있다. 지금 내 모습처럼 아직 겨울눈 속에 꽁꽁 쌓여 싹을 틔울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벌써 초록 잎을 내놓은 친구들도 있다. 동네 앞산에는 상수리나무와 갈참나무 등 참나무들이 많다. 참나무들은 비늘 겨울눈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아이들과 수업하며 갈참나무 겨울눈이 몇 개의 비늘 옷을 입고 있는지 세어본 적이 있는데, 30개를 훌쩍 넘겨 세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겹겹이 옷을 많이 입고 있으니 봄이 눈앞에 와 있는 걸 모르는 걸까? 아직 초록 싹이 틀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갈참나무 사이에 ‘나 여기 있어요’ 하고 가막살나무의 초록 잎이 엄지손톱만 한 크기로 보인다. 보통 2~4개 정도의 비늘에 둘러싸인 겨울눈을 가진 가막살나무는 옷을 벗기도 쉬웠던 걸까. 다른 나무들보다 봄을 맞이하는 속도가 빠르다. 아직 황량한 초봄 산책길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곳에서 보물을 찾은 마냥 반갑다.

또 저 멀리 햇빛을 받고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내는 여린 잎이 보였다. 때죽나무다. 열매를 짓이겨 물에 풀면 열매의 에고사포닌 성분으로 물고기들이 일시적으로 아가미 호흡을 할 수 없어 떼죽음을 당한다 해서 때죽나무라는 설이 있는 나무다.(무시무시한 이름과 다르게 단아한 꽃과 아름다운 잎과 수피로 개인적으론 참 좋아하는 나무 중 하나다.) 때죽나무 겨울눈은 털이 보송보송하고 단단한 껍질에 쌓여 있다. 여리디여린 초록 잎에 그 단단한 껍질을 어찌 뚫고 나왔을까. 용하고 대견하다. 미처 몰랐다. 여린 잎이 나오기 전까지, 이 산에 어린 때죽나무가 이리도 많았다는 걸 말이다. 

때죽나무 싹

발등에 걸리는 덩굴식물에도 봄은 오고 있다. 청미래덩굴의 싹은 작년에 자라던 덩굴에 싸여 단단한 가시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아마 조만간 가시 속에서 여린 싹이 돋아 또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날이 올 것이다. 산책로 어느 구석에는 쓰러진 나무가 간신히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싹이 나기 전엔 죽었겠거니 생각하고 무심결에 지나던 나무다. 허리 밑동이 동강 잘려나가 도저히 살았다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나무인데, 아! 그 나무에서 새싹이 자라고 있었다. 봄 산을 환하게 팝콘처럼 튀겨주는 꽃, 벚나무였다.

밑동은 잘려나갔지만 애잔하게 남아있는 온 힘을 모아 꽃을 피우려는 의지에 안타까움과 존경의 마음을 보냈다. 이 숲 어딘가에서 내 눈길을 받지 않은 많은 나무가 열심히 각자의 속도로 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다음 주에 산책을 가면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또 다른 ‘너’가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들에게 내 시선은 중요하지 않겠지만, 어딘가에서 준비하고 있을 ‘너의 시간, 너의 모습’이 궁금하다. 

겨울 동안 숨죽이며 잘 준비해온 자연의 뽐내기 잔치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각자 속도로 펼쳐지는 잔치. 내가 먼저여야 할 이유는 없다. 개나리는 개나리 속도로, 목련은 목련의 속도로, 산수유는 또 산수유의 속도로 서로 경쟁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시간으로 봄을 맞이하는 자연에서 여유를 배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아이들과 거의 4개월을 같은 공간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나의 속도로 아이들을 재촉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엔 흐뭇함이 흐르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엔 조바심이 흐르고 있다. 욕심이 넘쳐난다. 자연을 바라보듯 아이들을 바라봐야겠다.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다르기에.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