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

“10년 전 산에 갔다 심하게 굴러떨어졌는데, 그때 이후로 자꾸 허리가 아팠어요. 그게 원인이 되어 지금 제 디스크가 터진 거죠?”

디스크 환자들은 이처럼 종종 어떤 상황이나 사건이 디스크가 터진 원인이 아니냐고 묻는다. 환자 입장에서는 왜 디스크가 터졌는지 당연히 알고 싶겠지만 그리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디스크는 결코 어떤 한가지 원인으로만 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10년 전 굴러떨어지면서 다쳤던 것이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떨어지면서 척추에 가해진 충격으로 디스크가 약해진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무리하게 허리를 쓰거나, 잘못된 자세로 허리에 계속 무리를 주었다면 디스크가 터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처럼 10년 전 사건은 직접적 원인이라기보다 트리거포인트, 즉 ‘발생기점’ 정도 역할을 했을 것으로 봐야 한다. 

디스크를 터지게 하는 원인은 너무나 많다. 다양한 원인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해 디스크를 터지게 하는 것이어서 정확하게 이러저러해서 디스크가 터졌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디스크를 터지게 하는 요인으로는 가족력, 잘못된 생활습관, 디스크 퇴행 등이 거론된다. 요인들을 살펴보면 각 요인이 독립적이라기보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지가 많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원인이 다양하고 복잡하다고 예방법도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아니다. 원인이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어떤 원인 하나를 집중적으로 없애려고 노력하면 다른 원인도 함께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열량, 고지방 음식을 많이 섭취하던 사람이 잘못된 식사습관을 고치면 동맥경화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 가족력이 있더라도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치면 디스크가 터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디스크를 유발한 원인이 무엇인지에 집착하기보다 다양한 원인 중에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다. 퇴행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퇴행을 피할 수 없지만 그 속도는 개인차가 크다. 어떤 사람은 빨리 늙고, 어떤 사람은 나이 70살에도 청년 같은 허리를 자랑한다. 타고난 유전적인 요인 때문에 퇴행 속도가 차이 날 수도 있지만 잘못된 생활습관이나 질병 등이 얼마든지 퇴행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척추의학계에서는 디스크가 터지는 원인보다 퇴행 원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디스크가 퇴행해 약해져 있으면 별로 무겁지도 않은 물건 하나 들다가 터지고, 기침 한 번 하다 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행 원인을 밝히기란 쉽지 않다. 퇴행은 곧 노화이며 노화는 인체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이가 들면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는 것처럼 디스크 퇴행도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다 설명할 수 있으면 좋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요즘에는 10대 청소년들한테서도 디스크 퇴행이 발견된다. 10대면 계속 세포가 생성되는 나이라 노화가 오기에는 이른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MRI를 찍어보면 40~50대 허리처럼 퇴행이 진행된 흔적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또한 평균 수명은 점점 길어지는데 현대인들의 디스크 퇴행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대체 무엇이 현대인들의 디스크 퇴행을 부추기는 것일까? 예상되는 원인은 있다. 먹을거리가 풍부해지면서 고열량, 고지방 음식을 많이 섭취하고,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예전보다 움직일 기회가 대폭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보내니 허리가 약해지기 쉽고, 덜 움직이고 더 많이 먹으니 체중이 증가해 허리에 실리는 부하가 커져 결과적으로 디스크가 빨리 늙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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