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모습

‘동지에 추워야 풍년이 든다’, ‘눈은 보리 이불이다’ 라고 했다. 한 겨울, 가장 추울 때에 곤충들이 어느 정도 얼어 죽으면 다음해에 곤충에 의한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가을에 싹이 올라오는 보리는 눈이 내려 싹을 보호해줘야 추위와 바람을 견디고 봄에 잘 자랄 수 있다. 올 겨울은 눈도 오지 않고, 콧속까지 느껴야 하는 추위도 없었으니 벌써부터 걱정이다. 봄에 꽃이 많이 피는 과실수의 피해나 매번 소나무를 힘들게 하는 소나무재선충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빠른 대처를 해야 한다는 뉴스도 보게 된다.

3월 초, 땅이 녹았으니 퇴비를 섞어서 밭을 갈아야 할 때이다. 농사꾼은 자연의 시계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인다. 때를 놓치면 그 해 농사는 어그러진다. 그런데 올해는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에 늑장 아닌 늑장을 부리게 됐다. 작년에 심지 못한 감자를 올해는 좀 심어보려고 한다. 강원도 사람이라 그런가, 감자가 떨어지면 마음이 불안하다. 쌈채소도 심어서 수확하는 재미와 함께 아이들이 싱싱한 채소를 먹을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또 지인이 올해의 농작물로 작두콩을 추천해 줬다. 요즘 누구나 달고 사는 비염에 효과가 좋고, 맛도 구수하다고 하니 몇 포기만 심으면 우리 가족 먹을 만큼은 수확하지 않을까? 여행도 계획 세울 때가 가장 즐거운 것처럼, 농사도 무엇을 얼마나 심을지 생각하고 그려볼 때 웃음이 절로 난다. 

숲을 다니는 것과 텃밭을 가꾸는 일은 기본적인 마음은 같지만 전혀 다른 활동이다. 숲은 그 안에 있기만 해도 많은 것을 얻는다. 하지만 텃밭은 들어가는 순간부터 열심히 움직여야 하고 잘 들여다 봐야한다. 나보다 농작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농작물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돌보는 사람이 매일 드나드는 밭은 정말 깨끗하고 풍성하다. 땀을 몇 바가지 흘리면서 가꾼 밭과 그렇지 않은 밭이 같을 수 있겠는가. 필자의 밭도 늘 빈약했던 것을 잠시 반성해 본다. 밭에 농작물을 키우는 것은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연과 함께 하는 활동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가꾸고 나면 수확하는 하나하나가 너무도 소중하다. 하지만 올해 텃밭에선 곤충과의 싸움이 확실해 보인다.

텃밭에서 가꾼 채소들.

숲이라고 곤충의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애벌레들이 떼를 지어 발생하거나 그 성충들이 한 나무를 초토화시키는 것을 여러 번 봤다. 하지만 숲에서 그런 정도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무 상태에 따라 해마다 결실률에도 파도치는 곡선이 생기듯, 곤충의 상태나 환경에 따라서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작은 변화는 계속 일어난다. 그래서 숲은 극단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다. 숲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텃밭은 생태계가 아니다. 사람이 퇴비를 줘 땅을 기름지게 만든다. 그늘 없이 햇빛이 쨍쨍한 밭에 물을 줘야하는 것은 필수이다. 자연이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키우는 것 이외의 식물들은 뽑아줘야 한다. 그리고 뿌린 만큼 거두어간다. 자연스러움을 넘어서 너무 많은 수확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 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곤충들의 침입도 그 부작용 중 하나이다. 맛있는 음식이 양껏 있는 텃밭을 곤충들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럴 땐 풍뎅이가 싫어하는 마늘이나, 진드기를 예방할 수 있는 한련화를 함께 키워서 곤충의 접근을 막는 방법도 있다. 예전엔 씨앗을 심을 때도 3알씩 심어서 하나는 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땅속 벌레가 먹고, 하나는 거둬들인다는 마음으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것이 싹이 날 확률을 계산한 것이든 함께 먹고 사는 자연을 생각한 것이든 마음이 넓어지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어서 매번 밭으로 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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