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근

코로나는 태양 둘레의 가장 바깥에 있는 대기층으로 플라즈마라는 이온화된 고온 가스층을 말한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지만 개기일식이 되면 육안으로도 볼 수가 있다. 이 코로나 층의 온도는 수백만도에 이를 정도로 뜨거운 곳인데, 같은 이름의 바이러스는 현재 전국을 사회적 빙하기로 만들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퇴치의 최전선에서 열정과 최선을 다해 수고하고 있는 의료진과 방역 관계자의 마음은 태양처럼 타고 있을 것이다.

지금이면 전국 모든 학교에서 새 학기가 시작돼 생동감으로 들떠있어야 하는데, 실상은 적막강산처럼 변해버렸다. 중소 자영업자는 자발적 사회적 격리로 외출을 삼가는 바람에 매출이 곤두박질쳤다고 한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도 확진 환자가 발생하면, 관련 부서 인원이 전원 격리돼 업무가 정지되고 만다. 오죽하면 지금의 경기가 1990년대 말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기보다 더 나쁘다는 사람도 있을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의 냉각은 경제 뿐 아니라 문화 예술계도 마찬가지이다. 용인지역도 3월이면 신춘을 맞이하는 문화행사가 한창일 때인데, 다중이 모이는 모든 행사와 공연이 취소됐다. 가뜩이나 영세한 지역 문화 예술계는 유·무형의 손실이 엄청날 것이다. 이는 용인의 독립운동기념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3월 1일 용인시청 광장에서 개최된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행사에 주최 측 추산으로 5000명 넘게 참가했다. 100주년 행사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단일 기념일 행사로는 용인에서 역대 가장 많은 인원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용인의 독립운동 기념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조례도 시의회에서 통과됐다. 11월 순국선열의 날에 열린 학술발표회에서 100주년을 맞는 3·1만세운동과 용인 사람들의 독립운동을 선양하기 위한 기념관 건립 필요성이 제기됐다.

보통 100주년 등 일정 세기를 맞아 벌이는 기념사업은 닥치는 해에만 반짝하다가 그 다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그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예를 2014년 용인 지명 탄생 600주년 기념사업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기념관은 고사하고 지명의 유래를 알려주는 영구 기념시설 하나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용인의 ‘인(仁)’ 자의 유래가 되는 ‘처인’은 고려시대 자랑스런 대몽 항쟁의 현장임에도 낙후된 곳이라고 빗대어 ‘처진구’라는 비칭으로 불리고 있는 실정이 되고 말았다.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1주년을 맞는다. 용인은 101년 전에 일어난 용인의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해 지난 100년을 디딤돌로 삼아 새로운 100년을 위한 기념사업을 준비하려는 움직임이 펼쳐져 왔다. 용인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처인구 원삼면의 3·21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수지구 동천동의 3·29 머내만세운동, 기흥구의 3·30 만세운동을 기념하는 행사가 그것이다. 이와 함께 용인의 만세운동이 시작된 좌찬고개에 용인사람들 독립운동의 정신을 항구적으로 기릴 수 있는 기념관 건립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수지구는 101년 전 3월 29일 고기동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을 기념하고, 만세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의 유적을 찾아 표지판을 설치하는 일을 계획했다. 기흥구 역시 3월 30일에 하갈동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을 기념해 옛 기흥면사무소 자리인 신갈동주민센터에서 만세운동 재현 행진을 계획했다. 

101주년을 맞는 기념행사에 뜻을 함께하는 시민과 함께 일회성이 아닌 매년 의미있는 행사를 계속 이어가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올해 시민과 함께 용인의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삼켜버리고 기념관 건립 논의도 지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용인의 독립운동기념사업이 멈춰선 안 될 것이다. 올해는 기념행사는 실시하지 못하더라도 101년 전 독립을 외치며 용인 각지에서 독립만세 행진을 벌인 만세길을 발굴해야 한다. 그래서 그 길의 일정거리마다 연도에 표석을 설치하고, 만세운동의 행적을 글로 새겨 시민들이 그 의미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시민 주도로 시행하기 힘든 일도 있다. 10년 전만 해도 김량장동 옛 사거리 부근에서 오리골로 이어지는 길을 석농길로 불렀다. 그런데 이 명칭은 도로명 주소로 바뀌며 금령로가 됐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노고봉 중턱에 독립운동가 석농 유근 선생의 묘소가 있는데도 말이다. 용인시 당국은 부지명이라도 석농길로 해야한다. 이처럼 지명이나 도로명 부여와 같이 시민 주도로 실행하기 어려운 사업은 정치권과 관계 기관이 나서야 한다. 용인에는 한국 독립운동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걸출한 인물이 많다. 이 분들의 성함이나 별호를 관련 지역이나 도로 명칭으로 지정하면 그 의미는 매우 클 것이다. 용인의 독립운동가 가운데 이한응, 민영환, 유근, 여준, 김혁 등과 같은 분부터 명칭 부여가 시급하다. 

보훈처와 용인시는 협력을 통해 수지구와 원삼면의 3·1운동 수형자 명부를 발굴했다. 그 결과 수지구의 14명에게 대통령 표창이 추서됐으며, 원삼면의 20명은 현재 보훈처에서 서훈 심의 중으로 알고 있다. 이와 같이 독립운동 행적이 자료상 분명한데 여러 사정으로 서훈을 받지 못한 분도 여럿이다. 이분들을 발굴해 공적에 부합한 훈격으로 훈장을 추서하는 일도 정관계가 나서야할 일이다. 특히 포곡 출신으로 만주의 전설적인 항일 유격대장 이홍광은 보훈처에서 용인 출신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모현 출신 의병장 이익삼도 그의 활동에 비해 아직 서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용인독립운동기념관 건립도 시급하다. 건립 추진에 시민이 나서 군불을 때는 역할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건립에는 막대한 예산이 드는 만큼 관계 기관이 추진하고 정치권이 협조해야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이다. 이달 중순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후보가 결정돼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지역구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공약을 발표할 것이다. 물론 용인에는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할 사업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용인의 독립운동기념관 건립 등이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견인차 역할을 다하는 것도 용인 시민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용인 독립운동기념관이 총선 공약으로 채택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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