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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앞산’은 안녕하십니까?
  • 송미란(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생태활동가)
  • 승인 2020.03.1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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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로 잘려나간 앞산 나무

앞-산 : 마을이나 집 앞쪽에 있는 산마을의 앞쪽에 있는 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설명돼있는 앞산의 정의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앞산을 검색해보니 필자가 살고 있는 용인시 처인구에만 5곳이 나온다. 전국으로 따지면 아마 몇 백 개의 앞산이 나올 것이다. 너무나 흔해 하찮게 느껴지는 앞산. 당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도 앞산이 있습니까?

앞산. 우리 집 뒤에 있어도 친구들이 모두 앞산이라 부르면 그냥 앞산이 되는 산. 고유 이름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아무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옛날 지도를 찾아보거나 관공서 지적도를 찾아보면 혹시 알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이름이 뭣이 그리 중할까. 필자가 살던 동네에도 자그마한 앞산이 있었다. 거북이 머리 모양의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 있었을 텐데 기억에 없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내팽개쳐 두고 골목 어귀로 뛰어가기 바빴다. 변변한 놀이터 하나 없는 마을에서 골목은 숨바꼭질, 사방차기,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등 아이들의 놀이동산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놀다가 지겨워지는 어느 날,  누군가 앞산에 가서 놀자고 했다. 거기엔 골목과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봄이 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곳도 앞산이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면 진달래 따먹으러 산으로 가고, 노간주나무 열매가 열리는 계절엔 열매를 따서 총 싸움 하러 앞산에 간다. 산딸기, 개암, 찔레, 버찌, 잘 익은 알밤, 계절 별로 색다른 간식도 선사한다. 요즘 엄마들이 관심 있어 하는 EQ발달에 좋은 촉각놀이는 덤이었다. 울퉁불퉁한 나무껍질 만지기, 보들보들 황토 흙을 이용한 흙놀이, 나뭇잎 마다 다른 촉감들, 공짜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도 저도 싫으면 그냥 나무에 매달리며 그네놀이도 하고, 아지트를 만들어 소꿉놀이도 하는 등 앞산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었다. 눈이 펑펑 내린 겨울 어느 날, 잘 가꿔진 산소 옆 잔디는 포대썰매를 타기 좋은 장소였다. 그렇게 앞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바쁘게 아이들을 키웠다.

앞산이 내 평생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을 줄 알았다. 늘 그곳에서 날 기다려 주니까. 성인이 되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앞산으로 산책을 갈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고향 앞산은 끝내 나를 기다려주지 못했다. 어린 시절 거대해보이던 그 앞산도 도시화 앞에서는 버텨낼 수 없었다. 건설될 고속도로 나들목으로 필자의 고향 동네가 지정됐고, 마을사람들은 평생 살아온 터전에서 뿔뿔이 흩어지게 됐으며 아이들 놀이터였던 앞산은 반토막이 났다. 그렇게 기억 속으로 나의 앞산은 사라졌고, 고향도 함께 사라졌다. 도시에서 아이를 낳고 키웠다. 아파트 숲에서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산은 아쉽지만 숨통이 돼줬다. 
 

산책로 모습

도시를 떠나 다시 시골로 이사 오게 되면서 기억 속에 앞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산이 보이고 거실에 앉아도, 요리를 하면서도 보인다. 아이들과 산책하며 이야기 나누기 좋은, 어릴 적 고향 앞산처럼 내 옆에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밤에는 부엉이가 운다. 딱따구리들이 나무를 찍어내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기도 한다. 산책 중 고라니를 만나 서로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마을에도 개발의 위기는 찾아왔다. 모 반도체 회사의 세계최대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448만㎡이라는데 얼마나 넓은 땅인지 감도 안 온다. 이곳처럼 다른 마을도 개발 앞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나라 산림면적은 조금씩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초등학교 때 배우던 국토면적의 70%가 산으로 이뤄져있다는 통계는 옛말이 된지 오래다. 산림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산림면적은 633만5000ha로 국토면적 1002만9500ha 대비 63.2%를 차지한다. 개발화, 도시화로 사라질 이름 모를 앞산들이 눈에 밟힌다.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개발행위에서 앞산이 잘 버텨낼 수 있을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우리고장 용인 죽전의 앞산 ‘대지산’이 그렇다. 난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대지산을 시민들 힘으로 지켜낸 자랑스러운 사례이다. ‘땅한평사기’라는 작은 운동이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소망이 모여 결국 대지산을 지켜냈다. 내셔널트러스트(국민이 자금을 모아 자국의 자연환경이나 사적 따위를 사들여서 보존하는 제도)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이 제2, 제3의 대지산을 만들어 내리라 희망한다. 

요즘 극성을 떨치고 있는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아이들의 개학이 연기되고, 밖으로 나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변변히 나갈 곳 없는 시골 마을에서, 한 숨 돌릴 수 있는 앞산으로 산책 갈 채비를 한다. 지금, 당신의 앞산은 안녕하십니까.

송미란(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생태활동가)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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