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에서 벌어진 자유 국채 판매를 위한 퍼레이드 모습

1917년 2월,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압도적인 해군력으로 해상 봉쇄를 당해 불리한 상황에 몰려 있던 독일은 유보트라는 잠수함을 동원해 군함과 상선을 공격했다. 당시 중립국이었던 미국의 상선도 공격했던 것이다. 참지 못한 미국은 1917년 4월 6일 참전을 결정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400만 명의 젊은이들이 미국을 떠나 유럽에서 싸웠다. 많은 젊은 청년에 대한 훈련과 이동, 군사 물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다. 미 정부는 전쟁비용으로 320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1915년 미국 연방정부의 총예산이 10억 달러에 불과했다. 1910년 미국 국민 총생산액은 350억 달러였다. 엄청나게 부족한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모금 운동을 벌인 것이다. 이른바 ‘자유 국채’를 판매했다. 이 국채 판매는 230억 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국채를 판매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모아야 했고 영화 캡틴 아메리카에 등장하는 쇼나 코끼리 등 동물 등이 동원되는 거리행진도 있었다. 시민들은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신기한 쇼를 보기 위해 길거리에 모여들었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던 1918년 9월 28일 토요일 필라델피아에서도 국채 판매를 위한 행사가 시작됐다. 의장대 행진과 총검 시범, 4마리 말이 이끄는 8인치 곡사포와 비행기, 젊은 아가씨들의 행진까지 이어지면서 길거리에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20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열광했다. 인근 지역에서 독감 환자가 유행하고 있었고, 대규모 행사가 위험하다는 경고가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의사들은 이 행사를 중지할 것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력하게 요구했다. 2억 달러 이상의 돈을 모금해야 했던 지방정부는 행사를 강행했다. 

의료계의 경고가 현실화한 것은 퍼레이드가 끝난 직후였다. 주말 사이에 독감으로 39명이 사망했다. 9월 30일 월요일 병원이 문을 열자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매일 수백 명의 환자가 생겼고, 수십 명이 희생됐다. 의료진 감염도 속출했다. 의료기관은 환자로 넘쳐났고 병상은 부족했다. 고열에 시달리면서 집에서 괴로워하며 희생되는 사람들도 발생했다. 도시는 공포에 휩싸였다.
 

폐쇄된 극장을 표사한 신문만평

뒤늦게 심각성을 파악한 시 당국은 모든 학교와 극장, 교회를 폐쇄했다. 이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 술집, 수영장, 무도장 등이 차례로 문을 닫기 시작했다. 장례식은 성인 가족만 참석하게 했고, 교회나 공공장소에서는 금지됐다. 대규모 집회와 공개 모임은 엄격하게 금지됐다. 필라델피아는 독감이 끝날 때까지 약 1만3000명이 사망했다. 

미국 중부 도시 세인트루이스는 동쪽에서 발생한 엄청난 재난 소식을 들었다. 10월 9일 세인트루이스 시장은 의사인 스타클로프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스타클로프는 “독감은 세인트루이스에 곧 유행할 것이다”라고 선언하면서 모든 학교, 교회, 극장, 수영장, 당구장, 클럽, 무도회장, 공공장례식, 야외 집회, 행사 등을 중지시켰다. 필라델피아와 같이 자유 국채를 판매하기 위해 준비됐던 퍼레이드는 취소됐다. 손 씻기 등 개인위생 활동을 홍보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피할 것을 강조했다. 당연히 극장 소유주들은 항의했고, 많은 연예인과 특히 교회에서 거센 항의가 있었다. 그러나 스타클로프는 엄격하게 다중이용시설 폐쇄 정책을 밀고 나갔다.

10월 18일 500여 명의 환자가 발견돼 32명이 사망했으나 필라델피아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는 않았다. 환자 증가세가 약간 줄어들자 세인트루이스 시장과 기업체들은 스타클로프의 대응이 과도하다며 영업 재개를 요청했다. 정치계와 경제계의 압력이 계속되고 환자가 약간 감소하기 시작한 11월 12일 일부 극장과 학교 수업이 재개됐다. 그러자 다시 환자들이 급증했다. 스타클로프는 전문가들과 회의를 한 뒤 다시 극장과 학교를 폐쇄했고, 이 조치는 12월 28일까지 유지했다. 세인트루이스는 1918년 3만1693명의 독감 환자가 발생했으며, 이 중 2910명이 사망했다. 미국 10대 도시 중 가장 적은 피해를 받은 도시였다.

두 도시의 결과는 전염병에 정치가 관여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할 경우 큰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의료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행사를 강행했던 필라델피아는 큰 피해를 봤다. 반면 강력한 반대에도 의료계에 전권을 줘 적절한 대응을 한 세인트루이스는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과거의 경험은 오늘 우리에게 어려움을 해결하는 길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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