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나무 숲 전경

제주도에 가게 됐었다. 안 좋은 상황이었지만 갑작스런 기회로 이때가 아니면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예매하고 다음날 도착한 제주도.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가 거기라고 많은 것이 비슷했지만 또 많은 것이 달랐다. 

‘나무 이야기’를 쓰며 나무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진 터에 제주에서도 나무에 대한 호기심은 멈출 줄 몰랐다. 제주도에 도착 후 가로수를 보며, 한라산 언저리 도로를 달리며, 사려니숲길에서, 동백나무 가득한 마을 돌담길에서, 노란 귤이 달려 있는 감귤농장을 지나며, 강정마을에서, 천제연폭포 아래에서, 검은 돌 가득한 바닷가에서 만나는 모든 식물을 눈에 담으려 했다.

그러다 호기심과 궁금증은 곧 무지로 인한 답답함으로 돌아왔고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됐다. 바다 건너 제주도라는 면죄부보단 아마 생태활동가로서 다 알아야 한다는 욕심이 컸던 것 같다. 그렇다고 식물도감 들고 다니며 핸드폰 검색하고 탐구할 수는 없었다. 같이 간 가족들이 그런 필자를 마냥 기다려줄 만큼 너그럽지 않았기에, 곧 대충 둘러보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과 답답함은 오롯이 필자가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굴거리나무 모습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걷다보니 어느덧 편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자세히 보며 하나하나 감별하는 지적 충족 대신, 나무의 전체 모습을 보며, 아니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고민 없이 바라보며 오히려 그 생명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날씨가 따듯해서인지 겨울임에도 어디에서나 푸른 잎을 단 식물들이 잎을 반짝거리고 있었고, 바닷가 마을 작은 자투리땅에서도 꽃은 피어있었다. 그냥 초록이 주는 평화와 생명이 주는 신비에 행복했다. 알아서 좋은 것도 있지만 몰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제주에 가서 ‘오름’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름 중에서 높아 ‘산’이라는 꼬릿말이 붙은 영주산엘 올랐다. 제주도의 숲은 평소에 보는 용인의 숲과 많이 달랐다. 모르는 나무가 많았고, 익숙한 듯 아는 듯 헷갈리는 나무도 있었다. 그래도 확실히 알 수 있는 나무는 산수국이었다.

산수국은 꽃이 지고 나서도 열매와 가짜 꽃이 바짝 마른 모습으로 남아 “내가 산수국이요” 하고 표를 낸다. 활짝 핀 보라색 산수국이 만발한 제주의 숲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쥐똥나무도 있어 반갑게 아는 척 할 수 있었다. 산 정상부에 많았던 소나무는 아주 싱싱하게 물이 올라 있었다. 초록 바늘잎이 어쩜 그리 싱그럽게 반짝일 수 있는지, 평소에 보던 소나무와 달랐다. 맨날 보던 참나무들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대신 그만큼 삼나무를 볼 수 있었다. 우리 동네 숲의 신갈나무나 아까시나무 만큼 흔하게 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초록색 잎에 빨간 열매가 아주 눈에 확 띄는 나무가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 있었다. 어떤 나무는 잎이 다 떨어진 채 빨간 열매만 잔뜩 달고 있는 나무도 있었다. 저 나무가 뭔 나무요? 했더니 그게 먼나무란다. 나무 이름이 ‘먼나무’다. 한라산 언저리를 넘어오며 길쭉하고 큰 초록색 나뭇잎 줄기가 유난히 길고 빨갛던 인상적인 나무가 ‘굴거리나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삼나무, 먼나무, 굴거리나무도 제주에는 흔하지만 우리 용인숲에는 없는 나무들이다.  

이번 제주여행은 모르는 체 편견 없이 바라보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있는 만큼 알게 되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균형을 잡으며 즐긴 자연산책이었다. 자주 보고,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사랑하는 마음은 저절로 생긴다. 그렇게 우린 숲의 일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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