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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92년 중국 후한 남부지역의 장사 태수 손견은 군사를 이끌고 형주의 유표와 충돌했다. 당시 중국은 ‘황건적의 난’ 이후 동탁의 국정농단으로 중앙정부가 혼란에 빠지면서 지방은 군사 집단에 의한 무단 점거와 다툼이 벌어지면서 군웅할거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손견은 유표를 공격해 승리하고 양양성을 포위했다. 유표는 곤경에 빠지게 됐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별동대를 내보내서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성에서 빠져나간 별동대를 추격하던 손견은 매복에 걸려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손견이 전사한 곳은 양자강 근처였는데, 후에 무창과 한구·한양 세 개의 도시가 발전했다. 1927년 세 도시를 통합해 인구 천만의 대도시 무한이 됐다. 현대 중국 발음으로는 우한이라고 불린다. 최근 우한시에서 원인 모를 폐렴이 발생해 큰 걱정거리를 만들고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중국 남부를 장악한 유표는 장사 지역에 새로운 태수를 임명했다. 장사지역의 새 태수는 백성들을 살피고 병자들을 돌봐줬다. 계속되는 전쟁의 혼란으로 양자강 일대는 각종 전염병이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장사 태수는 환자들의 증상 개선을 위한 실용적인 처방에 집중했다. 훗날 자신의 치료 경험을 정리해 감염성 질환의 원인으로 찬 기운이 몸을 상하게 만들었다는 이론을 정립했으며, 발열성 전염병을 주로 다룬 <상한론>을 남겼다. 화타와 더불어 후한말 명의로 유명한 장중경이다. 장중경의 상한론은 <황제내경>과 더불어 동양의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찬바람이 질병을 유발시킨다는 개념은 <동의보감>에도 소개돼 겨울철 흔히 앓게 되는 기침 등의 증상을 ‘감모’라고 불렀고, 찬바람의 나쁜 기운에 의해 발생하며 도라지, 감초, 인삼 등의 약초를 사용하는 기록이 있다.

찬바람이 몸을 상하게 해서 질병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같았다.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혈액과 담즙, 점액, 흑담즙 4개의 조화가 깨지면 질병이 발생한다는 ‘체액설’을 주장했다. 겨울철 찬바람이 균형을 깨뜨리기 때문에 불순물을 몸 밖으로 배설하기 위해 콧물이 만들어진다는 이론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은 중세까지 유럽을 지배해 나쁜 기운을 빼내기 위해 피를 뽑는 극단적인 방법이 사용되기도 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감기에 걸린 후 2리터가 넘는 사혈을 시행한 뒤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1860년 파스퇴르의 실험으로 질병은 세균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현미경을 통해 많은 병원성 세균이 관찰됐고, 많은 과학자들이 감기의 원인균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기는 세균보다 더 작은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었다. 그 정체는 1950년대 전자 현미경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유럽은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미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연합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의료지원도 포함돼 있었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은 단순한 진료뿐 아니라 의학연구와 실험을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하버드 의대의 의료지원단은 영국 남부의 항구도시 솔즈베리에서 환자 진료와 연구를 시작했다. 전쟁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전염병 발생은 쉽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발병 원인과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실험과 연구가 함께 수행될 수 있었던 솔즈베리 병원은 아주 유용한 시설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 솔즈베리 병원을 해체하지 않고 기존 시설을 활용한 새로운 연구가 계획됐다. 겨울 내내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감기’의 원인균을 찾아 나선 것이다. 쉽고 간단한 프로젝트로 생각했던 이 연구는 40년간 지속됐다. 

솔즈베리는 감기를 유발하는 다양한 이론에 대한 검증에 나섰다. 가장 먼저 실험한 찬바람은 감기 증상을 유발시키지 못했다. 수천 년간 감기의 원인으로 알려졌던 찬 공기는 잘못된 것이었다. 감기 환자들의 콧물을 모았고, 현미경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감기의 원인 물질은 좀처럼 정체를 밝혀주지 않았다가 1955년 처음으로 바이러스 하나가 발견됐다. 원인 바이러스를 발견했으니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 그러나 감기 바이러스는 하나가 아니었다. 몇 년이 지나면서 수백 개의 바이러스가 발견됐고, 수많은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개발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1960년 솔즈베리 병원 인근의 사립학교 기숙사에서 감기가 유행했다. 솔즈베리 연구팀은 학생들의 콧물에서 검체를 모아서 바이러스를 찾기 시작했다.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가 나왔다. 이것을 이용해 진짜 감기 증상을 만들어내는지 성인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시행했다. 이런 검체들 중 몇 개는 감기 증상을 유발했다. B814번 검체도 그런 것 중 하나였다. B814번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자 바이러스 껍질 주변에 뿔 같은 것들이 솟아나 있었다. 마치 왕관 모양과 같은 형태로 보였기에 왕관이라는 의미인 ‘코로나 바이러스’로 불리게 됐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가벼운 기침과 발열을 일으키며 1~2주 뒤 자연 회복됐다. 간혹 기관지염이나 천식을 악화시켜 폐렴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많지 않아 치사율이 높고 전염력이 컸던 독감에 비해 관심이 적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한 종류가 아니었다. 사람뿐 아니라 생쥐, 닭, 칠면조, 송아지, 개, 고양이, 토끼, 돼지 등 여러 동물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사람에게 유행하는 것과 약간씩 다른 모양이었다. 동물에서 유행하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파될 경우 문제는 심각해졌다.

2003년 중국 남부에서 발생한 사스는 전 세계 8000여 명의 환자를 발생시켰고, 그 중 775명이 사망했다. 사스는 사향고양이 등에 유행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변형돼 사람에게 전파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한국을 충격에 빠트렸던 메르스 역시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다.

이동훈

최근 중국 우한시에서 중증 폐렴환자가 발생했다. 우한 폐렴 역시 동물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 세계가 긴장하는 이유다. 장중경이 <상한론>을 저술했던 중국 남부는 다양한 전염병이 발생하던 지역이었다. 풍사나 한기가 질병의 원인이 아니라 세균과 바이러스였다.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한 노력과 연구가 진행돼야 전염성 질환에 잘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찬바람을 피하는 게 아니라 세균과 바이러스를 막아야 하는 것이고, 그 방법은 손을 잘 씻는 것이다. 손을 잘 씻지 않을 경우 얼굴이나 코, 입 등에 손을 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인 예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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