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4호 녹나무. 사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추운 겨울날 따뜻한 손칼국수를 먹으려고 동네 유명한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언제나 줄을 서서 먹는 이 집은 오늘도 어김없다. 추운 날이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기다렸다가 먹을 때 더 맛있다는 것을 아는가 보다. 계산대 너머로 보이는 주방에서는 젊은 아저씨가 연신 반죽을 치댄다. 저 정도로 쳐야 쫄깃쫄깃 맛있는 국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릴 적 필자의 할머니도 칼국수를 참 많이 해주셨다.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할머니는 큰 나무로 만든 안반에 어린아이만큼 긴 홍두깨를 가지고, 큰 대접 크기의 반죽덩어리를 가장자리부터 밀기 시작하셨다. 처음엔 대접만 하던 것이 점점 커져서 홍두깨 길이보다 큰 둥근 원이 되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고 멋지다. 그것을 착착 접고 삭삭삭 썰어서 밀가루에 묻혀 풀어내면 면이 만들어 진다. 겨울 먹거리를 책임졌던 안반이 무슨 나무로 만들어졌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할머니께서 쓰시던 것은 소나무로 만들었단다. 아직도 고향에 그것이 있는데 엄마도 가끔 쓰셨던 기억이 있다. 안반을 만드는 나무는 어느 정도 커야 하기 때문에 큰 나무를 베어도 두어 개정도 나왔을 것이다. 소나무, 피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박달나무 등 우리나라에서 크게 자라면서 단단한 나무들로 많이 만들었다. 

국수를 밀 때 또는 떡을 칠 때 썼던 이런 안반은 일종의 도마인데, 지금은 그렇게 큰 도마를 쓸 일이 별로 없다. 안반이라는 도마가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 플라스틱, 고무, 유리도마들이 편리하고 예쁘게 만들어져서 나무도마를 쓰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과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나무도마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 도마는 음식 재료를 썰고 다루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음식을 나르고 예쁘게 담는 그릇이나 쟁반의 역할까지 한다. 항균성과 자연스러운 멋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자작나무, 편백나무, 단풍나무, 삼나무, 그리고 캄포나무 등을 이용해 나무로 만든 도마가 인기 있는 이유이다. 

그중에 호주산 캄포나무가 몇 년째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호주는 청정지역’이란 좋은 이미지가 있어서 더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캄포나무는 우리나라 따뜻한 섬지방에 사는 녹나무로 영어로 ‘camphor tree’이다. 녹나무는 우리나라 옛날 불상을 만드는 나무이면서 고급가구나 배를 만드는 데에 사용할 만큼 그 목재로써 가치가 크다. 또 녹나무로 목침을 만들면 그 향기의 진정효과로 꿀잠을 잘 수 있었다. 향뿐 아니라 그 성분도 훌륭한 약재로 숙취 해소, 혈액순환, 식중독을 다스린다. 참 멋진 녹나무(캄포 트리)임에 틀림 없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내는 나무도마를 쓰는 것이 호주에서 완제품으로 들어와 비싸게 파는 캄포도마를 쓰는 것보다 좋을 듯하다. 캄포도마뿐 아니라 편백나무, 단풍나무, 느릅나무, 대나무 등 우리나라 좋은 목재로 만든 나무도마를 사용하는 것이 좀 더 자연을 생각하고, 더불어 우리사회를 생각하는 행동일 것이다. 필자도 나무도마에 칼자국이 나고, 김칫국물이 묻는 것이 싫어서 자주 그늘에 말려야 하는 것이 귀찮아 쓰다가 포기했었다. 그런데 무조건 편한 것보다 환경을 생각하는 선택을 해야겠다고, 그리고 아는 것을 삶에서 행동으로 옮겨야겠다고 다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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