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종

22년째 살던 집은 5층으로 된 맨션의 2층이다. 최근 이사를 했다. 1층에 터를 잡았다. 모처럼 남 눈치 안 보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잘 나가던 젊은 시절, 큰 집에 사는 것이 입신출세의 바로미터로 여겼다. 전세 살던 집에서 몇 번 굴려 맨션을 장만 했다. 아이들도 별 탈 없이 키웠다. 이제 나이도 들고 집 간수 할 일에 식구도 줄어 작은 집을 찾던 중 마침 가까운 곳에 신축된 타운하우스가 있어 바로 옮겼다. 시의적절한 선택이라고 주위에서 ‘쾌거’라고까지 말해준다.  

“사실 늙어가니 집 큰 것도 골칫거리더군. 관리보다 날마다 청소하기가 귀찮아 작은 집으로 옮기고 보니 아내가 청소에서 해방되었다고 더 좋아하더군, 이젠 집 사고 팔아 돈 불리는 때는 지난 듯하고 ...” 계산 빠른 아내 덕으로 강남 노른 자리에 아방궁을 갖고 있던 U회장의 말이다.

그의 마나님 말대로 청소에서 해방되었다고 좋아한다는 말보다 나도 2층에서 벗어났다는 홀가분함과 압박감에서의 해방에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이토록 1층을 예찬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1층은 바로 땅이라는 사실이고 땅을 밟는다는 것이다. 2층부터는 진정 땅이 아닌 공중에 부양하는 셈이다.

대지의 정기와 땅의 기운인 지기가 인간과 불가분 관계임은 동서고금 역사를 통해 확인됐다. 인간들은 땅을 등지고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둘째, 말썽 많은 층간 소음문제도 해결됐다. 고층에 사는 이들은 누구나 경험이 있을 터다. 땅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1층의 보금자리는 누구의 간섭도 받음이 없이 자유자재로 뛰고 놀 수 있는 허락된 공간이고 해방된 공간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명절날 손자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구슬치기 놀이를 하자 아래층에서 올라왔다. 놀이를 그만하라고 말하기보다 빨리 제집으로 가기를 속으로 바라는 비정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또 어느 날인가 자기 집 베란다 쪽이 누수 되는 데 우리가 물을 많이 써서 못 빠지는 것 아니냐고 항의를 듣기도 했다. 

골프장에서 가져온 셋트로 공넣기 연습을 하니 공 구르는 소리에 손자가 낮잠을 못 잔다는 R여사의 볼멘소리도 들었다. 비가 와서 날마다 걷던 경안천 대신 마루에서 조심스레 앞발로 살짝살짝 런닝을 했더니 층간소음이 난다고 올라와서 ‘나가서 하라’는 따끔한 충고를 들었던 기억 등등.

어쨌든 지난 20년간 용케도 참아 온 세월이다. 엄격히 말해서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조금의 활동도 할 수 없는 숨 막히는 순간들이었다. 이제부턴 ‘속박에서 풀려나 해방이다’ 하고 어린애 마냥 뛰고 싶었다. 자유가 넘치면 방종이 되고 민폐가 된다는 것쯤은 알면서도 내 마음대로 소리도, 노래도, 놀이도 해보고 싶다. 맘껏 뛰놀던 어릴 적 시골집 생각을 하면서 크게 숨도 내쉬며 활개 짓도 멋지게 해보려 한다. 바로 이 자유스러움이 딴 사람 눈치 안보는 맛이 바로 감미로움으로 변하여 날마다 살이 쩌 오르는 기분으로 온천지가 새로워 보인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