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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제 기생충약?
  • 이동훈(서울새로운내과 원장)
  • 승인 2019.12.1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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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과실주의 하나인 포도주는 식수 사정이 좋지 않았던 고대 서구에서는 물을 소독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정도로 일상적인 음료였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던 것도 포도주다. 포도주는 중세 이후 많은 발전이 있었는데 특히, 프랑스의 서남부 해안가인 보르도 지방은 포도 재배에 최적의 토질과 인근에 위치한 항구를 통해 유럽 전체에 수출되면서 유명해졌다. 좋은 프랑스 와인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의 보르도 지방을 찾게 됐고 보르도 지방은 큰돈을 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보르도 지방에 풍요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다. 치명적인 세균이 함께 들어와서 포도나무들을 병들게 했다.

19세기 중반은 프랑스의 파스퇴르가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파스퇴르는 와인의 맛이 변하는 원인이 미생물인 것을 발견하고 저온 살균법을 개발해 맛을 보존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바야흐로 미생물의 전성시대였다. 보르도 지역 사람들은 인근 대학 밀라르데 교수에게 포도나무 병의 원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밀라르데는 현미경으로 세균을 관찰해 포도나무를 괴롭히던 원인을 찾아냈다. 바로 곰팡이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많은 포도나무들이 곰팡이에 감염됐으나 도로 주변 나무들은 유독 아무런 피해가 없었던 것이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길 옆 포도를 따 먹는 경우가 많았다. 일종의 포도 서리였던 셈인데, 농장 주인들은 포도를 몰래 따 먹는 것을 막기 위해서 포도에 황산구리액에 석회를 섞은 물을 뿌려 놓았다. 포도서리를 막기 위해 사용했던 물질이 곰팡이를 막았던 것이다. 이 방법을 보르도 지역 전체 포도밭에 사용했고 곰팡이들은 제거됐다. 농작물의 질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되면서 프랑스 와인산업은 다시 번영할 수 있게 됐다. 보르도의 황산구리액은 지금도 보르도액이란 농약으로 사용되고 있다.

포도나무의 곰팡이는 보르도액으로 제거할 수 있었지만, 사람의 곰팡이는 보르도액을 직접 사용하기 어려웠다. 황산구리의 독성은 말할 것도 없다. 인체에 사용하기 위한 곰팡이 치료제는 1900년대가 돼서야 개발이 시작됐다. 염색약으로 개발했던 벤지미다졸이라는 물질이 곰팡이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1960년대 제약회사들은 벤지미다졸을 개량한 항진균제 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초기 약품들은 간독성이 심각해서 널리 사용하기 어려웠다. 1981년 미국 FDA는 얀센에서 개발한 케토코나졸을 허가했다. 케토코나졸은 전신적인 진균증에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질이었으나, 여전히 간독성이 있기에 의료진의 주의 깊은 진료와 정기적인 혈액검사를 통한 관찰이 필요했다. 

염색약으로 생각됐던 벤지미다졸에서 개발된 물질들은 곰팡이뿐 아니라 세균, 바이러스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심지어 일부 성분은 기생충 제거에도 능력을 발휘했다. 기생충에 시달리던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벤지미다졸의 개량 형태인 알벤다졸과 메벤다졸과 같은 물질은 단 한 알로 수천 년간 인류를 괴롭혀왔던 기생충을 사라지게 했다. 
2008년 미국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에서 암 치료를 위한 동물 실험을 하고 있었다. 동물에 사람의 암세포를 이식한 뒤에 각종 항암제를 주입해 효과를 판정하는 실험이었다. 사람의 암세포를 동물에 부착하면 면역력으로 잘 자라지 못한다. 면역체계를 파괴시킨 동물의 경우 종양을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암세포 이식이 잘 되고 항암제 효과 분석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면역체계를 파괴할 경우 장내 기생충들이 문제가 됐다. 면역이 없어 기생충이 번식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존스 홉킨스 의대 연구진은 실험동물 기생충 제거를 위해 구충제를 먹이면서 종양 세포를 이식했다. 그런데, 이식된 종양세포가 잘 자라지 못한 것이다. 특히 사료에 비타민이 많이 함유된 동물의 경우 종양이 잘 크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추가 연구를 통해 고농도 구충제의 암세포 억제 능력이 확인됐지만 장기 복용할 경우 간 독성 등의 부작용 위험성이 있었다. 실험실에서 항암효과가 있더라도 실제 환자에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임상실험이 필요했다. 동물 구충제가 아닌 사람들이 먹는 구충제 역시 항암효과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최근 한 미국인이 강아지 구충제를 먹고 암을 완치했다는 유튜브 내용이 국내에 큰 영향을 줬다. 염색약에서 시작된 물질이 항생제, 구충제로 이어졌으니 항암제로 활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회성 복용인 구충제와 달리 꾸준히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항암제로서는 전혀 역할이 다르다. 비슷한 계열의 곰팡이 치료제도 간 독성이 발생되는 경우가 있기에 더 많은 임상실험이 필요한 것이다. 효과가 없다면 모르겠지만 만일 항암효과가 조금이라도 있을 경우 현재 사용하는 항암제와 충돌이 발생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아직까지 동물 기생충약의 항암제 목적으로 사용을 권장하고 있지 않다.

이동훈(서울새로운내과 원장)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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