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옛날 옛날에’ 한지조명 연작 유명

전창호 작가

전창호 작가는 단순히 ‘그린다’라는 일반적인 개념의 미술을 넘어 다양한 방법을 추구하는 작가다. 그는 섬유와 한지가 지닌 물질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이용한 예술로 그만의 영역을 넓혀왔다. 그의 작품은 일반 회화와 선을 분명히 한다. 과거 유화로 작업하며 느꼈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섬유와 한지를 택했고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유화는 바탕이 되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덧대는 식으로 작품을 그리는데, 그러면 본질이 사라지죠. 섬유에 아무리 색을 입히고 빼도 그 본연의 성질은 그대로 갖고 있잖아요. 그 매력에 빠진 거죠.” 

천의 종류만 해도 250가지가 넘고 시판되는 면은 수만 가지에 이른다. 조직, 두께, 가공 방식에 따라 같은 색도 느낌이 달리 나온다. 천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작품에 그대로 녹아나와 그 자체가 예술이 돼 버리는 것이다. 

전창호 작가는 섬유예술의 그 묘한 매력에 빠져 30여년이 흐르는 세월 동안 관련 분야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재료에 물을 들이고 붙이고 자르는 다양한 방식은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힘들다. 그는 화학적, 물리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거듭하면서 국내에서 손꼽히는 섬유예술 분야 작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재료의 본질에 대한 집착은 그 자신의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됐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끝없는 물음으로 시작된 그의 연작 ‘Korea, 옛날 옛날에’는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테마로 작업하겠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은 죽을 때까지 못 벗어나요. ‘내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끝없는 물음이 ‘Korea, 옛날옛날에’로 발현됐죠.”

한반도 신석기, 구석기 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옛 유물을 모티브로 한 연작들은 특유의 색감과 과감한 표현력으로 발표 때마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본질’이기도 한 한반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찾는 여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가 늘 섬유라는 재료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때로 비섬유 물질을 이용하기도 했고 우리 전통의 숨결이 스며든 한지를 쓰기도 한다. 특히 솟대를 세운 한지조명 작품들은 그가 예술 안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표현하는지를 알 수 있다. 

“1995년에 일본에서 작고 둥근 등을 처음으로 봤는데 한지를 이용하고 있더라고요. 한지하면 우리인데 일본이 그걸 상품화해서 비싸게 팔고 있구나 싶었죠.”

우리 것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한지에 대한 관심으로 번졌다. 특히 4대째 종이를 만드는 ‘장지방’ 원료를 주로 사용해 한지를 직접 뜨고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차별화했다. 색 역시 계피, 오미자, 정향, 박하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특유의 성숙한 매력을 뿜어냈다. 

작업 초기 ‘누가 한지로 만든 조명에 관심을 갖겠느냐’는 우려는 보기 좋게 뒤집어졌다. 그의 첫 번째 전시는 모든 작품이 모두 고가로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모았고 동시에 섬유예술가 ‘전창호’라는 작가의 또 다른 이름 ‘한지공예가’를 더하는 계기가 됐다. 

섬유예술과 한지공예의 대표 작가로 자리 잡은 그는 아직도 예술에 대한 목마름이 강하다. 용인송담대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꾸준히 작품을 내놓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곧 개인전으로 대중과 만나고 싶다는 속마음도 내비쳤다. 

“한동안 개인전을 쉬었는데 내년쯤에는 대중에 공개해보려고 합니다. 자연에서 오는 그대로의 색, 재료 본연의 모습을 간직한 작품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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