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품 예술로 인간의 상처 치유하고 싶어”

수프캔, 코카콜라 병, 유명인의 초상화 등을 실크스크린이라는 판화기법으로 찍어 예술로 승화시켰던 앤디워홀. 1960년대 그의 작품들에 영감을 받아 다양한 실험 예술을 이어오고 있는 이가 있다. 이은정 작가는 앤디워홀이 추구했던 예술의 대중화를 넘어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전한다는 점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팝아트를 선사한다. 

이 작가는 젊은 시절 다양한 소재를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예술가로 통했다. 다 쓴 물감상자를 수집해 손가락과 발가락, 다양한 포즈의 자기 자신을 위트 있게 그려 넣는가 하면, 160cm 높이의 검정 기둥을 만들어 그 안에 광섬유를 심고 화려한 빛을 뿜어내도록 했다. 작은 비타민 음료수 병 200개를 쌓아 올려 타워 형상을 표현한 작품도 있다.

평범한 물건에 색을 입히고 뭔가를 덧붙이는 과정을 통해 그는 일상의 그 어떤 것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알렸다. 특히 버려진 쓰레기를 활용한 ‘폐품 오브제’는 이 작가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방식이다. 빈 병, 고장 난 시계, 오래된 거울 위에 천을 덧대고 이를 캔버스 삼아 그만의 예술을 창조해냈다. 

“일상에서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가치 없는 물건들을 통해 존재의 의미, 가치를 재조명해보고 싶었어요. 나 자신을 상징하는 폐품 작업은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정이었죠.”
1998년 발표했던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꿈’은 이 작가가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매우 따뜻하게 풀어갔음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얼굴을 본뜬 부조를 나무나 병에 올리고 새하얀 깃털로 그 주변을 장식하면서 어머니의 온기로 감쌌다. 어렵고 힘든 인생 여정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자신을 통해 고스란히 투영한 것이다. 

이은정 작가가 최근 들어 선보이고 있는 작품은 ‘그대를 품다’와 ‘현현’ 연작이다. 그의 상징이기도 했던 ‘폐품 오브제’를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캔버스로 옮겨 놨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의 폐품들이 하나같이 붕대를 감은 채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작품들이 자아를 찾는데 목적을 뒀다면 최근작은 삶의 고난 속에서 휘청거리는 타인들에게 집중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버려진 물건들은 인간, 그 위에 감은 붕대는 이은정 작가의 간절함이 담긴 치유의 손길이다. 부모님과 고교시절 스승을 연이어 하늘로 보낸 후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던 그가 내놓은 답이었다. 

“지금은 활짝 핀 싱싱한 꽃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역시 말라 죽잖아요. 아무리 붕대를 감고 특별한 처방을 해도 꺾인 꽃은 시드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를 치유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씁니다.”

화가 이은정은 대중과 동떨어진 고고한 예술이 아닌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예술을 꿈꾼다. 앤디워홀이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으로 부르며 누구나 감상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찍어냈듯이 말이다. “제 작품을 보고 많은 분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해요. 더 나아가 삶을 좀 더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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