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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사와 미아즈마
  • 이동훈(서울새로운내과 원장)
  • 승인 2019.11.1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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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을 피하기 위한 중세 유럽 의사 복장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면서 콜록거리는 감기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매년 겨울철 증가하는 감기는 리노 바이러스, 아데노 바이러스 등이 원인이다. 눈에 잘 안 보이고, 현미경에서도 잘 식별되지 않는 감기 바이러스들은 1950년대 전자현미경이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식별되기 시작했다. 찬 바람이 불면 시작되는 호흡기 증상을 영어로 ‘Cold’라는 춥다는 의미의 단어가 사용됐으니 질병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찬바람이 병을 일으킨다는 개념은 고대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동양에서도 감기가 바람의 나쁜 기운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상한(傷寒)’이라는 단어는 추운 바람에 몸이 손상되는 것을 의미한다. 후한 말 화타와 더불어 명의로 유명했던 장중경은 호흡기 질환으로 가족의 절반 이상을 잃고 난 후 상한론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장중경은 찬 기운과 접촉하면 질병이 생긴다는 생각을 했다. 상한론은 동양 의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 동의보감에도 풍사가 코로 들어가서 온몸으로 퍼지게 된다고 기록돼 있다. 풍사는 다양한 의미로 분석될 수 있는데 바람에 있는 나쁜 기운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서구에서도 찬바람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개념은 근대까지 이어졌다. 특히 나쁜 기운은 악취를 발생시키며 ‘미아즈마(Miasma)’라고 불렸다. 나쁜 공기가 질병을 일으킨다는 생각은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던 시절 냄새를 막기 위해 긴 새부리와 같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마스크 안에는 향료를 채워 나쁜 공기를 정화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흑사병 의사의 특이한 복장은 현대에서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면서 유명해졌다.

나쁜 기운이 질병을 유발한다는 미아즈마설은 중세를 지나 근세까지도 서구를 지배했다. 나이팅게일도 나쁜 냄새가 질병을 유발한다고 생각했기에 위생과 함께 환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크림 전쟁에서 많은 부상병을 구하는 데 큰 효과가 있었지만 황열병 환자들이 많았던 인도에서는 모기가 들락거리면서 질병을 전파해 상황을 악화시켰다.

미아즈마설이 의심받기 시작한 것은 1850년대 영국 런던에서 벌어진 콜레라 유행이었다. 콜레라 유행을 분석하던 존 스노우는 악취가 아닌 정수장 펌프에서 질병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여전히 나쁜 기운이 물에 녹아서 질병을 유발한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미아즈마설은 대세였다. 1864년 파스퇴르는 미아즈마설을 폐기시키는 결정적인 실험을 했다.

밀폐된 공간에 놓아둔 음식에는 미생물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공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미생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파스퇴르는 가늘고 긴 입구를 구부러지게 해서 공기는 통하면서 미생물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특별히 제작한 병 속에 고기 국물을 끓인 뒤 놓았다. 공기가 통했지만 고기 국물에서는 미생물이 발생하지 않았다. 세균이 직접 접촉돼야 증식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질병 역시 세균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찬바람이 감기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감기 바이러스들이 몸에 침투하면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춥고 건조한 날씨에는 감기 바이러스가 좀 더 오래 생존하고, 따뜻하게 여러 겹 입은 옷과 실내 공간에 오랜 시간 지낼수록 접촉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감기가 유행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콧물을 많이 발생시키는 리노 바이러스의 경우 섭씨 33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찬 공기가 호흡기 내로 들어오면서 점막의 방어기능을 약화시키고 바이러스 증식의 최적 환경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환절기와 겨울철에 감기가 많이 확산되는 것이다. 

수많은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모든 백신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치명적인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접종만 개발돼 활용되고 있다. 독감은 일반 감기와 달리 심각한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독감 예방접종과 함께 가장 중요한 것은 손 씻기다. 손 씻기가 만병통치약인 이유는 감기 바이러스는 공중에 날아다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부착돼 있고 그것을 손에 묻혀 입이나 코 등의 점막으로 이동시켜서 감염되기 때문이다. 감기의 주범은 바로 우리 손이었던 것이다. 독감 예방접종으로 면역력을 키우고 손 씻기를 열심히 한다면 추운 겨울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이동훈(서울새로운내과 원장)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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