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종

연초부터 일찍이 듣지 못했던 미세먼지 탓에 “마스크를 착용해 호흡기를 보호하세요. 내 건강을 지키세요” 하는 방송을 아침저녁으로 듣고는 틈나는 대로 찾던 경안천 걷기를 제법 길게 안했다. 다시 찾은 그날의 걷기는 모두가 새로웠다. 한 마디로 많이 빼먹은 불량생인 탓이었다. 지난날 시베리아에서 온 겨울은 영하의 찬 기온으로 움츠리게 하더니 얼음이 풀리면서 남쪽에서 봄이 찾아왔으나 봄도 며칠 동안 꽃피는 시늉만 했다. 봄이 실종되고 이내 여름이 왔다. 두 달의 길고 긴 섭씨 38도의 맹서(猛暑), 땡볕 더위는 땅도 화끈하게 달궈 40년 만에 하늘과 땅이 인간을 괴롭혔다. 지열 속에 묻혀 부대끼던 사람들을 물가로 내몰았다. 유식하게 말해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지구가 점점 더워져 이상기온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미세먼지와 더위 속에서 걷기로 승부를 겨루려고 할 때, 저 멀리 스웨덴 쪽에서 피서 오라는 쪽지가 날라 와 곧장 달려가 내 마음속의 출석부에 도장을 제법 길게 못 찍었다. 돌아와 다시 찾은 경안천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실 지난날 잡답(雜沓)한 서울 거리를 비켜 명산 길지라는 이곳 용인으로 옮겨와서는 처음엔 집 앞 마구산을 오르내리면서 스테미너를 길러온 지 1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이웃집 권유로 경안천 걷기로 바꾸었다. 비록 인조이지만 사철 푸른 잔디가 깔린 붉은색 자전거 길, 가는 곳마다 마련된 벤치와 러닝머신에 매달려 펴고, 주무르고 할 수 있는 열 가지 넘는 운동기구에 이끌려 등산이 아닌 걷기 바꿔서 틈나는 대로 열심히 걷는 모범생이 되려고 노력한 지 5년이 넘었다. 

하지만 25년 만에 금의환향한 C형이 돌아간 뒤 피서하라는 초청장을 보내와 놓치기 아까워 경안천 걷기는 당분간 결석하기로 하고 다녀왔던 것이다. 다시 찾은 그날, 경안천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동안 인정프린스아파트 앞에 있는 이름 모를 나무다리를 지나 경안천 남쪽 길을 걷다 보니 물막이 보 언덕 위에 펼쳐진 운동장의 변신. 바람 불 땐 흙먼지만 날리던 맨땅이 새파란 잔디 축구장으로, 바로 옆에 비만 오면 흙 수렁이던 널따란 공지도 잔디 위에서 친목을 다지는 모임의 장소로, 또 어른들의 게이트볼장으로, 그밖에 여러 가지 경기를 할 수 있는 만능운동장으로 새 단장하고 있었다. 또 돌리고, 타고, 뛰고 하는 운동기구들이 여기저기 설치돼 오가는 시민들을 부르고 있었다. 이 모두 100만 시민들의 복지와 건강에 전념하고 있는 시장님을 비롯해 공직자들의 배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벤치 쪽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지난날엔 언제나 둔전에서 이름을 모르는 나무다리를 건너 경안천 남쪽 길을 걸어 모텔 앞 새고지보 영동고속도로 밑으로 해서 종합운동장 앞 나무다리를 건너 돌아서 둔전으로 되돌아왔다. 2시간 넘게 걸리는 4km 남짓한 거리를 걷다 보니 여기저기 마흔 개가량 벤치가 놓여 있었다. 나무 그늘 하나 없이 빈 하늘만 이고 있어 볼 때마다 ‘항상 외롭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필자가 빈 사이 벤치마다 예쁜 칸나 꽃들이 양쪽에서 말벗을 하고 있었다. 이 꽃들의 잔치를 마련해준 이들의 세심한 배려에 너무도 감사했다.

전보다 더 늘어난 벤치며 칸나꽃들이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은 정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구근초로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열대 지방이 고향이란다. 오늘날엔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특히,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더욱 잘 가꿔 귀여움을 받는다고 인터넷은 말해준다. 그날 본 벤치 옆 칸나(보안등 번호7415 옆)는 줄기가 꺾여 붉은 꽃을 거꾸로 매달고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줄기에 붙었던 널따란 잎도 핏줄이 끊긴 채 시꺼멓게 시들어 어떤 것은 잎 위 발자국마저 뚜렷이 남긴 채 시들어 제대로 꽃도 피우지 못한 채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다른 벤치들을 보았다. 더러는 완전히 말라비틀어져 가루가 되어 바람 불 때마다 날리고, 또 다른 것을 보니 벤치 밑에 담배꽁초와 휴지, 과자 부스러기, 음료수병으로 지저분하다. 용인에 사는 시민 누군가 한 짓이다. 타지 사람이 여기 와서 손가락으로 해칠 턱은 없다. 끝으로 이 칸나들에게 정(井)자의 울타리(보호막)로 배려해주었으면 하는 바람 가져본다. 울타리가 있고 없음에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옹졸한 소견이라고 책할지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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