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나무 열매

숲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잎의 보리수나무를 보았다. 초록이 아닌 회백색에 가까운 잎을 가진 보리수나무는 언제봐도 참 특이하다. 작년 이맘때엔 빨간 열매가 가득했는데, 올해는 해거리를 하는지 열매가 도통 보이지 않는다. 풍성한 열매를 기대했다가 보지 못하니 왠지 허탕을 친 기분이다. 남쪽 따뜻한 지방에 사는 보리밥나무라면 지금쯤 꽃이 피었을 것이다. 보리밥나무는 보리수나무의 친구이다. 키가 많이 크지 않고 약간 덩굴성이다. ‘약간 덩굴성’이란 표현이 참 어중간한 말이면서 정확하게 그 식물의 특징을 집어주는 것 같다. 식물은 동물처럼 분리된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다른 환경과 굉장히 연속적인 면이 있다. 그래서 종을 구분할 때도 ‘털이 있거나, 없다.’, ‘비교적 평활하다.’ 같이 모호한 표현이 많다. 20년 넘게 숲을 다니면서도 이런 건 너무 애매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는데, 요즘 들어 이렇게 정확한 표현이 또 없는 것 같다. 

보리밥나무도 보리수나무와 비슷한 아이보리색 작은 꽃이 피고, 잎은 분을 바른 듯 하얗게 보인다. 잎 뒷면은 완전한 흰빛이다. 많은 나무들의 잎은 앞과 뒤의 색이 다르다. 잎 앞과 뒤의 역할이 다르고, 그래서 형태적으로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앞쪽은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고, 뒷면은 수분을 잃지 않으면서 공기를 출입시킨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을 항상 잊고 나뭇잎은 초록색인 것만 알고 있는 것 같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 평소와 다른 숲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지가 흔들리면서 나뭇잎의 뒷면과 앞면이 번갈아 가며 보이는 광경은 또 다른 숲의 매력이다. 나무의 비밀스런 모습을 본 것 같다. 
 

보리밥나무의 나뭇잎 뒷면

보리밥나무 꽃이 지금 피었으니 열매는 언제 익을까? 겨울 동안 하얀 털을 입고 추위를 견딘 후 봄이 되면 통통하고 빨갛게 열매가 익는다. 국화와 같은 가을꽃들이 가을에 바로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날리는 것과 차이가 있다. 가을이면 너무도 당연하게 잘 익은 과일, 떨어지는 낙엽과 앙상한 가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것은 미디어가 우리에게 만들어준 이미지이다. 

따뜻한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중부에 사는 우리와 다르게 동백나무, 사철나무, 삼나무의 사철 푸르름이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월동하는 식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얕지만 다양한 지식을 쌓는데 재미있는 주제가 될 것 같다. 곤충들 중에도 겨울을 알 상태로 보내는 사마귀, 부전나비, 산누에나방, 메뚜기 종류, 번데기로 보내는 박각시, 여러 나방 종류, 성충으로 겨울을 견디는 말벌, 무당벌레 등 여러 형태로 월동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전략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식물도 동물도 급격하게 줄거나, 한 번에 사라지지 않고 대대로 살 수 있는 것이다. 

보리밥나무를 보면서 다양함과 다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여러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소수는 아쉽게도 힘들게 살 가능성이 높다. 다양성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지만 언제나 튀는 것은 좋지 않은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며칠 전 너무도 젊은 한 탤런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많이 허무했다.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언제나 당당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을까? 마지막은 너무도 안타깝다. 다양함과 다름이 우리를 더 살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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