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해거름녁.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음식을 할 장작이 마련되고 솥이 고인돌 옆 너른 마당에 걸린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한기가 느껴온다. 누군가에 의해 장작불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아낙은 아낙대로, 동네 청년들은 그들대로 손놀림과 발걸음이 빨라진다.

올해 할미지석제(석제사)를 주관할 당주는 윤해성씨다. 윤씨는 보름 전 당주로 지명된 후 몸을 정갈히 해왔다. 매일 목욕재개는 물론이요, 잠자리와 외출도 삼갔다. 흉한 것이 있으면 애써 외면하며 지냈다. 이미 지난 밤 지장에 고인돌 밑에 모셔놓은 터주를 손보고 주위를 깨끗이 해 놨다.

8시경. 서서히 할미지석제 준비가 돼가고 있다. 오늘의 동제(洞祭)를 돕기 위해 선정된 유사 3명과 함께 의관을 새로 갈아입는다. 음식은 추렴을 통해 모은 기금으로 정성껏 마련한 것을 당주 집에서 상을 차렸다. 소머리와 고기, 과일이 올라있다. 9시, 당주와 유사 등 선출된 몇 명만이 고인돌 보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제례가 시작된다. 잔을 올리고 축문을 펼쳐든다. 한문으로 쓰인 글에 운을 띄워 읽혀지는 축문. 풀어보면 이런 내용이다.

“유세차… 유학 윤해성과 동네 주민 거주민은 삼가 작은 소와 술, 과일을 갖추고 목욕 재개하여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삼가 아뢰옵니다. 지석묘의 신령, 창연한 큰 돌덩이, 평지에 우뚝 솟아 큰 마을을 진압하시고, 원대한 기상이 방박이라 할만 하더이다. 종신의 조화가 큰 고을에 미치나니, 진나라의 채찍이 어지럽게 움직이자, 한나라 북이 울리는 듯합니다.

경건히 도움을 받드나니, 재앙을 덜게 하옵소서. 우리 마을에 복이 있어, 신의 영험을 입었나이다. 목욕재개하고 경건하게 기도하나니, 영원토록 안락하게 하여 주옵소서. 삼가 나물과 떡을 갖추어 감히 길상을 바라나니, 높으신 신령께서는 이를 의지하고 들어주옵소서. 삼가 예를 갖추어 재배하나니, 신령을 보호하고 도와주소서. 신에게 경건하게 아뢰옵고, 또 아뢰옵나이다.”

9시 40분. 제사의식에 참여했던 사람들까지 모여 음식을 든다. 얼추 100여명은 돼 보인다. 타지에 가 살던 이들도 마을을 찾았고, 먼 이국 땅에서 들어와 인근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자리를 같이했다. 소금간을 치지 않은 백설기, 제수로 올렸던 고기를 넣어 끓인 국, 햅쌀로 지은 밥, 막걸리와 소주가 전부지만 모처럼 동네가 왁자하다.

11시. 타들어가던 장작더미 불길도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거나해진 주민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2003년 하지석 마을의 할미지석제(석제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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