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승태

용인시는 행정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시민 편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인구가 많은 과대동을 나누는 행정구역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관련 조례 개정안을 마련했다. 시는 입법 예고 과정을 거쳐 10월 중 열리는 용인시의회 임시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시의 행정동 분동 계획을 보면 기흥구 영덕·상갈·동백동 등 3개 동을 7개 동으로 하는 내용이다. 상갈동을 상갈·보라동으로, 영덕동을 영덕1·2동, 동백동을 동백1·2·3동으로 각각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상갈·보라·지곡동 등 3개 법정동이 합쳐진 상갈동을 제외한 동백·영덕동은 기존 행정동에 단순히 1, 2, 3 숫자를 붙여 동으로 나누는 안이다. 동백동이 동백동과 중동이, 영덕동이 영덕동과 하갈동이 합쳐진 행정동임을 감안하면 아쉽고 씁쓸하기만 하다. 시는 중동과 하갈동 등 법정동 명칭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강변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기존 행정동에 숫자를 붙이다 보니 지역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의 향토사학자들이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8년 전 처인구 남사면에서는 뜻 있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지명회복 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외세에 대한 저항과 승리의 상징인 ‘처인’을 고의로 왜곡한 만큼 이를 바로 잡자는 운동이었다. 당시 기자도 이러한 취지에 적극 동의했다. 땅 이름에는 우리말과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남사면의 ‘처인’ 지명 회복운동을 계기로 본지는 일제에 의해 잘못된 땅이름과 어원을 벗어난 마을 이름을 바로 잡는 연속기획을 마련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남사면을 ‘처인면’으로 변경하는 개명안이 지명위원회에서 의결됐음에도 면 명칭 변경에 실패한 것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땅이름이나 동 명칭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따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조상으로부터 대대손손 물려받은 마을 이름과 읍·면·동·리 단위로 지리 체계를 인식해 왔다. 그 공간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동질감을 느끼며,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나 상징물을 통해 나름의 지명이나 이름을 부여해 왔다. 그래서 한 향토사학자는 “지명은 마을 공동체의 상징이며 그 지역 특성이나 주민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물론 위에 언급한 예는 이번 행정구역 개편에 따른 행정동 명칭 변경에 직접 대입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역사 이래 최대의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해 전국의 지명들을 수없이 왜곡했던 행정구역 ‘폐합정리’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용인시가 2017년 말 ‘뿌리 찾기 운동’을 통해 잘못된 지명을 바로잡거나 다른 지역의 도시명칭을 용인지역 명칭으로 변경한 사례가 11건에 이른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을 떠올리면 분동에 따른 행정동 명칭 결정은 아쉽기만 하다. 당시 시는 뿌리 찾기 운동에 대해 용인시민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고유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행정구역은 시민들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인구뿐 아니라 지역정서와 생활권, 교통, 지역특성 등을 반영해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행정구역이나 명칭을 한 번 확정하고 나면 다시 바꾸기 쉽지 않다는 점을 행정당국이 깊이 새겼으면 한다. 입법예고를 통한 의견수렴 기간이 남아 있는 만큼 용인시가 행정동 명칭에 대해 보다 전향적으로 고민해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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