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를 그리고 있다. 가을이 되니 유년의 그리움들이 기억창고의 뚜껑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하기 때문이다. 엉겅퀴 꽃잎이 추억 속으로 날아오른다. 연둣빛 벼 이삭이 너른 들판에 가득할 때 조뱅이 지칭개 엉겅퀴 등이 좁은 농로에 지천이었다. 그 논둑 사이로 언니 오빠 여동생과 걸으며 봄이면 꽃을 따 소꿉놀이를 했고, 가을이면 메뚜기를 잡아 볏줄기에 끼우며 놀았던 생각이 난다. 동네 어귀에서 언니 여동생과 고무줄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놀았고, 오빠들은 그 옆에서 구슬치기와 자치기를 하기도 했었지.

가끔 아버지의 퉁소 소리 혹은 기타를 치며 부르던 노랫소리를 들으며 나무 그늘에서 잠들기도 했었다. 그래 아버진 돈 버는 것 빼고 못 하는 게 없으셨지.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못 다루는 악기가 없으셨다. 가사의 의미도 모른 채 아버지가 홀로 부르시는 ‘사의 찬미’도 자주 들었던 아련한 기억 너머의 유년. 어른이 된 후에야 질곡 많은 사랑을 한 윤심덕이 직접 가사를 쓰고 노래도 불렀다는 걸 알게 됐다. 방학이 되면 클래식 기타를 하던 셋째 오빠가 집에 와 멋지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해 줘 논둑에 우리 형제자매들과 옆집 친구들까지 옹기종기 앉아 손을 턱에 괸 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하늘과 그 벌판과 계절을 물들이던 야생화들! 그중 엉겅퀴를 그리고 있다. 봄의 환희와 가을의 겸손. 내가 어른이 되어 또 한번의 추석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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