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 묘사에 작가 해석 더해

‘항일의 혼을 깨우다 13인 연구기획전’에 출품할 작품 앞에서 선 예미숙 작가.

파격적, 획기적인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이 대세인 시대다. 단순화해서 추상적 느낌을 살리거나 누구도 쓰지 않았던 재료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작가도 있다. 대중은 이런 작품 앞에서 각자의 해석이 가능하다. 한 작품이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고전적 순수미술은 사실 이러한 ‘새로움’ ‘다양함’ 보다는 ‘아름다움’에 주목한다. 사물을 꿰뚫는 세밀한 묘사에 평범한 어떤 소재도 아름다움은 극대화된다. 서양화가 예미숙 작품이 바로 그 느낌이다. 

그의 작품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솔직함이 매력이다. 그저 작가가 그리고 싶은 소재를 작가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가 캔버스에 담은 정물과 풍경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속된 말로 ‘돈 되는’ 작품은 아니다.  

“요즘 풍경화나 정물화를 사는 사람은 없잖아요. 하지만 저는 순수미술에 매력을 느껴요. 너무 직관적으로 그려서 ‘올드하다’ ‘아카데믹하다’는 평도 받지만 그래야 작가 예미숙인 걸요.”

예 작가는 사물을 집중해서 보고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능력이 좋은 작가로 통한다. 세밀한 붓 터치가 압권인 수채화나 나이프로만 그리는 유화 작품 모두 예 작가의 그런 능력을 잘 보여준다. 그의 작품들은 특히 사실적 묘사에 탁월한 색감이 더해져 극대화된 미를 표출한다. 기와를 벽으로 쌓은 한 고가의 풍경이나 오래된 장독대 사이로 피어난 들꽃이 인상적인 시골 풍경을 담은 작품들은 보는 순간 탄성을 자아낸다. 캔버스 위에 멈춰버린 풍경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어느 공간에 들어가 서 있는 느낌이다.  

예미숙 작가의 작품 매력은 흔히 볼 수 없는 소재에 있다. 그가 연작으로 그려온 ‘배’ 시리즈나 ‘스쿠터’ ‘이화동 프로젝트’는 모두 예 작가만의 특별한 모티브다. 

“크고 작은 배들이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배는 한번 물위에 떠서 폐선이 되기 전까지 바다와 육지를 오가야 하죠. 사람이 늙어 무덤으로 들어갈 때까지 삶을 살아가는 모습과 비슷해요. 어떤 풍랑 속에도 묵묵히 항해하는 모습 역시 인간의 삶과 닮았죠.”

시어머니가 살아온 고향의 모습을 담거나 남편과 늘 함께 타는 스쿠터를 연작으로 그리는 일은 예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어디에 두는 지를 잘 설명해준다. 그는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과 소통하고 관계하는 작가다. 이화동의 한 거리는 작가의 눈을 통해 다시 수십 년 전 그 때로 돌아간다. 그 장소를 아는 이들 뿐만 아니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조차도 낯설지 않은 공간이 돼 버린다. 그림에 담긴 그 순간의 추억을 공유하게 되는 셈이다.     

예 작가는 최근 용인미술협회가 주관한 ‘항일의 혼을 깨우다 13인 연구기획전’에서 머내만세운동을 주제로 3개의 작품을 내놨다. 그동안 그가 보여준 순수미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미와 상징을 담은 유화작품으로 완성됐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당시 독립운동을 벌였던 주민들의 결연함과 간절함은 붉은색의 배경으로, 작품 맨 위의 나무 세 그루와 푸른 하늘은 그럼에도 남아있던 희망을 의미한다. 수백 가지 색을 세밀한 나이프 터치로 완성한 사람 형상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는지를 표현했다. 

“농사일로 가장 바빠야 할 농번기에 일을 제쳐두고 만세운동을 벌였어요. 그러니 먹을 것도 나올게 없었겠죠. 머내마을에 아주 어리고 나이 많은 이들을 제외하고 모두 나섰던 운동이었어요. 작품을 위해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다가 제 작업실이 바로 그 현장이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24일부터 10월 6일까지 용인시청 문화예술원에서 펼쳐지는 이번 연구기획전은 예 작가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이 그 동안 소재에 대한 타고난 집중력과 관찰력을 통해 이뤄졌다고 믿어왔던 이들에게 기분 좋은 충격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사물을 통찰하고 이를 재해석해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듭하는지, 그리고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화폭에 담아내는지 비로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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