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다섯 살 무렵 방학을 맞은 삼촌들과 고모들이 모여 “자유”란 말을 여러 번 쓰는 것을 들으며 “자유가 뭐예요?”라고 물었다. 그때 삼촌은 우리 조선이 더이상 일본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 대신 오늘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은 남을 시키지 말고 직접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도 너무 충격적인 근사함을 느껴 그 이후로 툭하면 오빠들에게 핑계 삼았던 일들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은 기억이 있다.

그 이후 내방은 내가 청소하겠다고 한 엄마와의 약속을 이제까지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살아왔다. 내 아이들에게도 숙지시키려 노력했다. 10대가 되며 직접 눈으로 보고 들었던 4·19와 5·16의 경험은 나라를 잃지 않으려면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은 정직함과 근면함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결혼해 아이들을 키우고 잘하지도 못했던 시집살이 속에서 어느덧 사십을 바라보게 될 때 깊은 생각이 왔다.

“내가 만약 환갑까지 살게 된다면,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내가 지금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배고플 때 말고 누가 나를 기다려 줄까?”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 속에 몇 날 며칠을 헤맸다. 어른들은 “살아가면서 벽을 만나면 크게 움직이지 말고, 그냥 그 자리에 머물며 벽을 넘어설 때까지 성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엉뚱하게도 학창 시절 영어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If I were a Bird, I could fly the blue Sky!” “너희들은 If I were a Bird”가 아니라, If I were a 남자, If I were a 장관, If I were a 대통령을 꿈꾸어 보라”고 하셨다.

우리는 그저 웃기는 이야기인 줄만 알고 깔깔거리며 문법에만 매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던져주신 아주 힘찬 메시지인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바보였다. 선생님이 마지막 동창회에 참석하셨을 때 동문들이 부르는 ‘교가’를 한 번 더 듣고 싶으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가슴이 살짝 아려왔다. 그리고 지난번 팔순 잔치에 200여 명의 동창이 함께 자리했다.

나도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고, 장수의 샘플이 없었던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옳을지 힘들고 당황스러워 보름달 달맞이하듯 ‘팔순맞이’를 한번 해 보았다. 젊은 시절 나는 직업 전선에 뛰어들 환경이 안 돼 ‘문화봉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그나마 내게 찾아와준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39살부터 전문직에 대한 갈망이 아쉬워 목이 터져라 부르짖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오늘의 문화봉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동기였다.

‘인문학과 IT의 꽃’이 되고 싶은 열망으로 하루하루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팔순 때 만난 동문들에게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향기는 나를 무척 감동시켰다. 퇴직 후 보람된 길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친구들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서로서로 위로하고, 기뻐하는 모습에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할 수 있어! 그럼 어떻게?” 세상은 너무 바쁘게 변하고, 내 생각만으로는 따라가기도 버겁다. 하지만 주도적이고 주체적이지는 못해도, 사회적 정치적 편견을 깨고, 약간의 변화에 호응해가며 ‘균형 있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나가는 현인이라도 만나면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슴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로망에 귀를 기울여 볼까? 아니면 예멘 서쪽 항구도시에서 피어 나는 모카의 향에 취해 볼까나? 구십을 바라보게 된 나는 무엇을 꿈꿔야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끼려나? 지금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우직하게 밀고 나아가도 괜찮으려나? 이제는 발걸음도 물에 젖은 듯 무겁고, 눈을 뜨면 손가락에서 뽀득뽀득 소리도 들리는데. 팔십 넘은 늙음이 가져야 하는 ‘정신’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의 선택이 진정 자유로움을 주지 못하면 어쩌지?
그래! 이제부터라도 ‘생각의 근육’을 키우고, 혹시 하늘은 날지 못할지라도, 풍선 하나하나에 <영혼까지 꺼내어> 속마음을 적어 보자.

1. 나는 “장.수.인.싸.다”
2. 나는 태어날 때부터 늙은이가 아니다.
3.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내 앞에 줄어들고 있는 시간을 눈빛으로 주고받는 친구들이 200명이나 있다.
4. 늙어 아무도 기다려지지 않는 날이 올까 가끔은 두렵지만 늙었다는 것만으로 지구상의 질병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지나온 세월을 합해 지구상에 심장이자 정신이고 싶은 거다. 
5. 힘들지만 AI나 로봇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6. 조금은 두렵지만 죽음도 환희와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질병이 더 늙은 나를 간섭하기 전에 죽음의 순간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로 죽음의 볼륨을 높이고 싶다.
7. 나는 오직 한순간만 나의 것이었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을 수 있다.
8. 죽음보다 산 송장이 되는 것이 더 두렵다.
9. 아들딸들이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지, 얼마나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른 척할 뿐 다 안다.
10. 그래서 “우리는 장.수.인.싸.다!”

등등의 여러 가지 소원을 담아 팔십에 필요한 희망과 꿈을 담은 풍선이라도 한가득 띄우면 마음이 조금은 자유로와 지려나? 아차! 풍선 중에 하나는 미국에서 일찍이 혼자되어 사남매를 키웠다는 친구를 위해 “애썼다, 사랑한다!”라는 쪽지 한 장 넣어 훨훨 푸른 하늘에 마음껏 띄워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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