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창고로 가는 길’ 연재를 시작한 첫 회, 유년시절 지금의 처인구 남동 동진마을로 이어진 아리랑고개의 무서웠던 추억을 언급한 적이 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고개를 넘을 때면 짐승들 울음소리에 머리카락이 곤두섰을 만큼 무서움에 고개를 뛰어서 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땐 짐승 울음소리도 무서웠지만, 더욱 오싹하게 만들었던 건 지금의 용인문예회관 근처쯤에 있었던 허름한 작은 집(창고)이었다. 상여와 각종 제구를 넣어두었던 상엿집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한낮에도 감히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기자에게 상엿집은 꽤나 강렬했던 것 같다. 장례 때 시신을 묘지까지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단순한 운구용 시설이지만, 예부터 상여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동안 임시로 거처하는 집’으로 여겼기에 유년시절 두려움은 어쩌면 당연했을지 모르겠다. 지금이야 ‘상여놀이’나 ‘천장행렬’처럼 상례가 전통민속놀이나 축제로 발전해 왔지만, 과거에는 엄숙한 예식의 하나로 무거운 주제였다.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관혼상제 예식의 형식과 내용은 물론, 그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지만, 죽음에 대한 의식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그 의례 절차를 통해서 자신의 비통한 마음과 정서를 제어하고, 마음의 애통을 적절하게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며, 적절한 시간 내에 일상생활로 복귀하도록 하는 과정”이라는 상례, 세계 여러나라의 전통 상례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용인에 있다. 2013년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에 문을 연 ‘예아리박물관’이다.

세계관·한국관 운영 전통 상례문화 볼거리

예아리박물관은 한국관 정국장도감의궤반차도와 함께 개혁 군주로 추앙받고 있는 조선 정조의 국장행렬을 미니어처로 재연해 놓았다.

예아리박물관장의 부친 고 임준 선생이 평생동안 수집한 국내·외 상장례 유물과 자료를 한데 모아 전시해 놓은 곳이다. 경제성과 편의성만 좇아 그 본래의 의미가 퇴색·변질돼 가는 상장례 문화를 보고, 미래 세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전문박물관 필요성을 느껴 설립했다고 한다.

전시관 1층에는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나씨족의 무구를 비롯해 페루의 밀림지대에 거주했다는 차차이포족 토관, 죽은 이의 육신을 독수리에게 내어주는 티벳의 천장 등 세계 여러 민족의 독특한 상례문화를 보여주는 유물과 자료가 전시돼 있다. 2층 한국문화관에는 조선시대 목관, 수의, 상여 등의 유물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개관 특별전으로 마련했던 조선시대 개혁군주 ‘정조대왕의 마지막 행차’를 주제로 한 국장행렬을 재연해 놓은 미니어처에 눈길이 간다.

그러나 예아리박물관을 찾아가는 발길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박물관 기행 연재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용인 유일의 상례 전문 박물관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아마도 많은 사립박물관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겠지만, 예아리박물관 역시 운영이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임준 선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사업이 중단되는 위기 속에서 고인의 유지를 잇기 위해 개관했지만, 지속적인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 때문이다. 

사립박물관과 미술관 관계자들은 재정과 인력 부족으로 지원금을 받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을 정도로 운영 상황이 열악하다고 입을 모은다. 심지어 일부 미술관의 경우 전시실이 아닌 곳은 불을 켜지 않거나 소장품을 보관하는 창고가 노후화돼 열악한 환경에 방치하는 등 어려움이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예아리박물관 사정이 딱 그러했다. 박물관을 찾도록 만들기 위해 박물관 내 카페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면 입장료를 받지 않는 파격 운영에 이어 최근에는 아예 입장료를 무료로 전환했다.

박물관 속 이색카페, 또다른 즐거움 속 아련함

박물관 입구에서 전시관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편에 옹기 항아리가 줄지어 늘어선 곳에 있는 ‘드 아리’ 카페는 예아리박물관의 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해 짠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한여름 무더위 속 오아시스와 같은 카페는 예아리박물관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시관으로 이어지는 설치미술 작품을 보며 카페로 들어가면 이내 시원함과 향긋함을 느낄 수 있다.

내부에는 다양한 전 세계 유물과 생활미술 작품을 볼 수 있다. 예아리박물관 설립자 고 임준 선생이 일생 동안 수집한 국내·외 유물 일부가 카페 인테리어 소품으로 전시돼 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교실을 옮겨놓은 듯한 책상과 의자, 풍금부터 고가구, 아프리카 등의 악기, 중국 도자기와 토기, 오래된 축음기까지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다. 인테리어 소품이라곤 하지만 여느 카페에서 보기 힘든 작품과 유물이어서일까. 박물관 속 카페이지만, 카페 속 작은 박물관이라는 느낌이었다.
 

넓고 화려한 카페에서 사립박물관에 대한 안타까움을 생각하다니. 우리사회가 관혼상제 특히, 상례를 주제로 한 박물관을 받아들이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아무리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죽음은 여전히 ‘금기어’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리라. 남녀노소 누구나 ‘입관체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 가수 정태춘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선말 고개 넘어 간다, 자갈길에 비틀대며 간다.
도두리 벌 뿌리치고 먼데 찾아 나는 간다, 정든 고향 다시 또 보랴.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도랑물에 풀잎처럼 인생행로 홀로 떠돌아 간다.
졸린 눈은 부벼 뜨고, 지친 걸음 재촉하니 도솔천은 그 어드메냐.
- 정태춘의 ‘에고 도솔천아’ 가사 중 일부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정태춘의 노래와 상례를 다룬 영화 ‘학생부군신위’와 ‘축제’를 다시 한번 찾아서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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