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감동 그대로 표현한 ‘일출’ 대표작
허만갑 작가는 풍경화만 40년 넘게 그려온 작가다. 전국을 돌며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화폭에 담아왔다. 어린 시절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준 스승을 만나며 작가 인생은 시작됐다.
“고등학교 때 서울로 떠났어요. 학교 은사님으로 변시지 작가를 만났죠. 그림에 소질이 있던 저를 수업만 끝나면 매일 데리고 나와 여기저기 그림을 그리러 다니셨어요.”
고 변시지 작가는 제주 출신으로 고향의 자연과 풍물을 그린 풍경화가로 유명하다. 특유의 거침없고 대담한 필치로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작가다. 허 작가는 스승의 영향을 받아 풍경화의 매력을 느끼고 주변 자연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캔버스와 화구를 들고 현장에서 생생한 자연의 풍광을 담았던 스승의 모습을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이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담기 위해 허 작가는 전국 곳곳을 끊임없이 다녔다. 용인은 특히 허 작가에게 남다른 곳이다. 처인구 양지면 주북리에서 태어난 허 작가는 시골의 풍경을 보며 자랐다. 그러나 정겹고 아름다웠던 고향이 개발돼 점차 옛 모습을 잃어가면서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안타까움에 용인 곳곳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광교산 설경을 그리기 위해 같은 장소를 수십 바퀴 돌아 장소를 정했을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넘쳤다. 용인을 그린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약 100여 점에 달한다.
허만갑 작가의 풍경화는 특히 강한 생명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허 작가는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기는 작가다. 사진을 보고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현장에서 하루 종일, 때로는 며칠 동안 앉아 느낀 감정을 그대로 그림으로 담는다. 자연에 동화돼 그 일부가 됐을 때 제대로 된 풍경화가 나온다는 그만의 철칙 때문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흐름을 보면 그냥 빠져들어요. 더워도 추워도 모른 채 그림을 그릴 정도죠. 손이 얼어서 붓을 떨어뜨리고 나서야 너무 춥다는 사실을 아는 거예요. 땡볕에 그림을 그리다 피부 거죽이 따로 노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요.”
그의 방식은 작품을 통해 빛을 발한다. 화폭 속 풍경은 살아 숨 쉬는 생생한 현장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수십 년이 흘러 그림을 바라봐도 그릴 당시 그 현장으로 돌아간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작품 ‘일출’은 해가 떠오르는 순간의 감동과 느낌을 그대로 담은 허만갑 작가의 대표작이다. 수면 위를 방금 벗어난 둥근 해 주변으로 어둡기만 했던 하늘은 금세 분홍빛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다. 바다는 떠오른 해를 반기듯 잔잔한 파도가 그 빛깔을 온전히 품는다. 관객들은 그의 작품 앞에서 마치 일출의 한 장면을 바라보는 느낌을 갖게 된다.
“새벽부터 숨죽여 기다렸다가 30분 만에 작품을 완성했어요. 그 때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남기고 싶어 완성 후엔 수정이나 터치를 전혀 하지 않았죠.”
허만갑 작가는 수십년 전 그린 작품도 언제 어디에서 그렸는지 하나하나 설명이 가능하다.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기 위해 정성들여 장소를 찾고 긴 시간을 공간과 하나가 돼 완성했기 때문이리라. 작품 속 그 곳엔 바람의 숨결, 빛의 따스함까지 담겨 있다. 허 작가만의 특유 꾸밈없고 대담한 붓 터치가 이를 가능하게 만든다.
“나무 하나가 저만큼 자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을까 생각하면 절대 대충 그릴 수 없어요. 자연은 위대하면서도 겸손합니다. 그 깊이를 오롯이 담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