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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광고지와 우산
  • 최영종(수필가.처인구 고림동)
  • 승인 2019.08.13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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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종

바로 어제(4일) 아침에야 알았다. 가까운 마트에 애들 엄마, 그녀와 같이 차에 타려다가 앞 유리창을 바라보니 명함 크기의 광고 종이가 와이퍼 밑에 끼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빼려고 하니 물기에 젖어 쉽게 빼낼 수가 없었다. 그냥 차를 타고 마트를 거쳐 그녀가 꼭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여기저기 물가조사를 마치고 돌아와 그만 종이 빼는 것을 잊었다. 다시 오늘 점심 무렵 차 안 열기를 몰아내려고 에어컨을 켜다 보니 그 광고지가 눈에 들어왔다. 빼려고 하다가 간밤에 내린 비에 젖어 처져 있었다. 그대로 타고 다니면서도 벗겨낼 생각뿐이다. 사실 누구나 차에 어떤 흠집이 있으면 그 부분이 크고 적건 간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래서 내 주위 사람들은 “오늘도 차를 화장시켜 데리고 나왔군, 마치 새 차 같네. 나이는 좀” 하며 흠집 없고 깨끗이 세차한 애마, 서열로 따져 밑에서 세어 두세 번째 가는 내 차를 보고 하는 말이다.

 “사람이 아침 세수에 화장 안 하고 나오나” 하고 응수해 줬다. 어쨌든 이 흔적을 지우려 하니 면도날 잘못 대면 유리에 흠집 생길까 생각하다간 슬며시 화가 났다. 물에 부풀어 희미해진 전화번호대로 눌렀다. 신호음이 한창 울린 뒤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예, 전화 주신 분은 누구신데요. 여기는 ○○○○ 학원입니다. 무슨 일로 전화 주셨나요?” “며칠 전에 그 학원에서 학생모집 광고를 꽂았나요? 비에 젖어 유리창과 한 살이 되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와서 떼어주세요. 경고 드립니다” “그래요? 죄송합니다. 어디신데요. 요즘에는 학생들도 자사고 특수고 난리 통에 모이지 않아 장사도 안 되고, 알바하는 학생 구하기도 힘들어서 제가 가서 떼어 드리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문 닫고 가서 떼어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오십 대쯤 돼 보이는 여인의 목소리에 진정한 사과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여기 둔전 쪽인데요. 보낼 알바생도 없고 혼자 계신다니 아주머니 입장을 잘 알 것 같습니다. 꽂더라도 운전자가 잘 보이는 곳에 꽂으라고 교육시키세요. 그곳과 이곳은 그리 멀지 않으나 이번엔 내가 떼어 내겠습니다”하고 끊었다. 그것쯤 떼면 될 것을 유난히 전화로까지 까탈 부린다고 비웃을지 몰라도 필자는 큰 인심을 관용(?)으로 썼다고 홀로 쾌재를 부르고 싶었다.

예부터 산천 좋고 인심 좋다는 이곳, 용인에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주인을 몰라 원대복귀 못 시키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어 찾지 않으려면 부디 이 기사를 보고 필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길 빌며 감사를 전하려 한다. 

사연은 지금도 현관에서 옛 주인의 어려운 처지를 지레 짐작해 조금의 불편과 손해를 아까워하지 않는 40~50대쯤 되는 옛 주인에게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는 노란색을 띤 우산이다. 사실 이젠 우리네 살림이 놀랍도록 좋아진 호시절 탓으로 우산 풍년이다. 지금은 의·식·주 무엇하나 안 좋은 것이 없다. 우리집 세 식구도 나가서 비 맞게 생기면 그때마다 우산을 사곤 해서 긴 것, 중간 것, 삼단짜리 합쳐서 삼십여 개가 현관 한쪽 못에 걸려 벽을 덮고 있다. 이런 우산 풍년은 이제 웬만한 집에서는 볼 수 있는 흔한 일일 것이다. 여기에 계절 맞춰 문양도 다른 파라솔 역시 사람마다 한두 개는 꼭 가지고 있다. 이 우산은 주인 아주머니의 마음씨처럼 흠집 한군데 없는 고운 우산이다.  

지난 6월 어느 날 밤 기흥역에서 경전철 타고 둔전역에 내리니 비가 제법 기세를 펴며 내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역사를 벗어나니 기세가 대단했다. 아침에 기상 예보를 안 들은 죄려니 하고 둔전 노인정 옆 운동장을 지나면서 유비무환을 생각하니 당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비 맞고 걸었다. 뒤에서 “이 우산 같이 받으시지요” 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이어 머리 위에 커다란 우산을 받쳐 든다. 

“고맙습니다. 왕십리부터 계속 땅속으로 기흥역까지 왔는데 비 오는 줄 모르고 내렸습니다. 우산 살 데도 없고 해서 그저 맞으며 걸을 작정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댁이 어디신데요. 같은 방향 같으신데요.” “여기서 약 12~13분 걸으면 됩니다. 영화아파트 앞이지요.” 슬쩍 옆을 보았다. 분명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로 한쪽을 잡고 있던 우산대 방향을 아주머니 쪽으로 더 돌리고 3,4분을 더 걸었다. 앞쪽 저 멀리 산책길 따라 지어진 아파트와 빌라 군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희미하게 보인 순간 “우리 집은 여기만 올라가면 바로입니다. 선생님 사시는 옆 동네에서 살다가 이쪽으로 옮긴 지도 꽤 되는데요. 지금도 아는 친구가 그쪽에 살고 있어요.” 

비는 계속 내렸다. “선생님 저는 다 왔어요. 이 우산 받고 가세요. 조심히 가세요”하고 우산대를 잡았던 손을 뿌리치듯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고맙습니다” 하는 인사도 들을 길 없이 돌계단을 오르나 싶더니 어느새 골목으로 사라졌다. 정말 어두워 얼굴도 자세히 보지 못했고, 집 호수도, 누구네 엄마도 모른 채 비 오는 그 밤의 감사함을 갚을 길이 없다. 물어 적기도 힘든 상황이었기에 그날 밤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엉킨다. 오늘도 주인 기다리는 우산에게 소식을 뭐라 말해 줄까? 답이 안 나온다.

최영종(수필가.처인구 고림동)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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