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의 신형장부도. 췌장이 없다.

사물을 정확하게 그리기 위해 과학적인 관찰을 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체 묘사를 위해 해부를 시행하기도 했다. 천재적 화가 손에 그려진 인체 해부도는 매우 사실적이고 정확해 오늘날의 기준으로 봐도 놀라울 정도였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놓친 장기가 있었는데, 그 장기가 바로 췌장이다.

췌장은 우리 몸속 장기 중 가장 깊숙한 중심 부위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 지방 세포들과 함께 뭉쳐져 있어 구별하기 어려웠다. 실제 췌장을 처음 발견한 그리스의 헤로필로스나 루퍼스는 살덩어리라고 보고 이름도 살덩어리가 모인 것(pancreas)이라고 붙였다. 이런 살덩어리들은 위나 신장, 간 등이 척추와 부딪히는 것을 방지해주는 쿠션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췌장이 내장기관이라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이르는 중세시기까지 췌장에 대한 언급 자체가 사라지게 됐다. 

서구에서 췌장이 사라진 비슷한 시대에 제작된 동양의 인체 해부도 역시 오장육부에서 췌장이 빠져 있었다. 시신 해부를 꺼렸던 동양에서는 일부 한의사들에 의한 부분적인 해부학적 지식이 전승돼 오고 있었고, 해부도 역시 개념도의 형식을 취해 실제 모습과 거리가 있었다. 고대 동양의학에서는 일부 췌장의 기능을 비장의 역할로 오인하기도 했으며, 중국의 전통 해부도들을 인용한 동의보감의 ‘신형장부도’에서도 췌장은 언급되지 않았다. 

서구에서 췌장이 다시 등장한 시기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주변의 지방 조직과 붙어 있는 췌장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조차 관찰하는 데 실패했지만, 1543년 화가였던 제자의 도움으로 사실적인 그림으로 유명했던 베살리우스의 인체 해부도에서 다시 등장했다. 췌장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췌장은 살덩어리가 아니라 물주머니 같아 췌관을 통해 소화효소를 분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부 학자들은 개의 췌관에 대롱을 연결해 쓴 맛이 나는 소화액을 직접 맛보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도. 췌장이 없다.

서구의 췌장 연구에 대한 성과는 실크로드를 타고 당시 중국을 지배하던 청나라로 전파됐고, 청나라에서는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서양 이민족의 장기라는 의미로 ‘이(胰)’라는 이름을 붙였다. 1771년 네덜란드와 교류하고 있던 일본은 서양 해부도를 번역해 <해체신서>라는 책을 만들었다. 기존 한의학에 없던 새로운 장기 명칭을 붙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일본 의사들은 신경, 연골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창조했고, 췌장은 당시 네덜란드어를 음차해서 대기리이(大機里爾)라고 명명했다. 췌장이 분비선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이해한 뒤 1808년 한 글자의 한자어로 새롭게 ‘膵(일본 발음으로는 스이(すい))’라는 단어를 만들어내 사용하기 시작했다. 

구한말 중국의 ‘이(胰)’와 일본의 ‘스이(膵)’가 혼재하며 사용돼 胰는 ‘이자’로 읽혔고, 膵의 ‘스이’라는 낯선 발음은 국내에 정착할 때 취와 췌로 혼재돼 북한에서는 취라고 발음하고 남쪽에서는 췌로 발음하게 됐다.

췌장의 역할은 소화효소 분비에 그치지 않고 인슐린을 분비해 혈당을 조절하는 중요한 장기였다. 혈당이 올라갈 경우 신장으로 당이 빠져나가 단맛의 소변을 만들어낸다. 당뇨의 원인은 췌장의 문제로 인슐린이 부족하거나 기능 장애가 발생한 경우였다. 고대 동양에서 당뇨 원인을 ‘음허조열’로 설명한 것은 췌장이라는 장기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당뇨로 소변을 많이 보고 탈수한 상황을 당시 관점에서 설명한 것이다. 치료 역시 증상 완화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질병의 근본을 찾기 위해서는 원인 부위를 직접 관찰하는 것은 기본이다.

췌장이 발견되고 당뇨의 근본적인 원인이 밝혀졌고, 대증 요법이 아닌 원인 치료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인슐린을 비롯한 다양한 당뇨병 치료제가 만들어지고 혈당 조절이 가능해지면서 당뇨인도 건강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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