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장인을 만나다] 자전거 인생 45년, 대리점 운영 용인 이재덕 대표

알톤스포츠 자전거대리점 이재덕 대표

40여 년 전만 해도 주요 교통수단은 승용차보다 버스였다. 또 다른 이동수단을 꼽으라면 아마도 자전거가 아닐까. 1970~8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닌 40~50대에게 자전거는 지금처럼 운동수단이라기보다 등·하교를 위한 교통수단으로써 목적이 더 컸다. 또 어른들은 논이나 밭으로 가기 위해, 또 시내로 나가기 위해 이용하던 주요 수단이었다. 상인들은 물건을 싣거나 배달하는 용도로, 그 시대 아버지들은 어린 자녀를 태우고 다니는 아주 요긴한 이동수단이었다. 그래서일까? 40~50대 중·장년층은 자전거와 관련한 추억이 적지 않은 듯하다. 

옛 용인읍(처인구 4개동)을 고향으로 둔 이들이 자전거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공용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자전거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재덕(79) 대표다. 45년째 한 자리에서 자전거 판매와 수리를 하고 있는 이 대표는 인생의 반 이상을 자전거와 함께 살았다.

경기 안양이 고향인 이 대표는 군 입대 전 자전거포(지금의 대리점)에서 일을 했는데, 그 인연으로 전역 후 처음 가진 직업이 자전거포다.
“1972년이지 아마. 용인에서 사령부가 들어오고 역북리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해서 앞으로 좋아지겠거니 하고 왔는데, 알고 보니 군인 아파트더라고. 그렇다고 돌아갈 수 있어? (용인에) 뿌리를 내린 거지.”
 

이재덕 대표는 고장난 부분 수리 외에도 이곳저곳 살피며 간단한 수리를 해준다. 이같은 서비스는 물론 덤이다.

이 대표가 지금의 자리(바로 옆 L빌딩 자리에서 자전거포를 운영했지만 빌딩 건축으로 지금의 자리로 옮김)에서 45년째 자전거 대리점을 운영하게 된 계기였다. 한국 나이로 80세, 보통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라 그런지 주위에서 “이젠 쉬시라”는 권유도 많이 받는다. 언제까지 하실 계획이냐는 물음엔 “힘 닿은 데까지 하는 거지. 자전거 뒤집을 힘만 있으면 하는 거지. 쉬면 뭐 할거야?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낼 건데”라는 말이 되돌아올 뿐이다.

80세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젊어 보이는 이 대표이지만, 더위와 추위 아랑곳하지 않고 45년 자전거를 고치는 생활이 힘에 부치기도 할 터. 벽에 걸어놓은 자전거를 내릴 때 “끄응”하며 내는 소리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자전거에 있어서는 이 대표를 따라올 이가 많지 않다. 증상을 얘기하거나 소리를 들으면, 또 육안으로 보면 금방 문제를 찾아내 ‘뚝딱’ 수리해 낸다. 바퀴 교체, 기어 변속기 문제, 브레이크 고장 등 거창한 도구 없이도 이 대표 손을 거치면 언제 고장이 났었느냐는 듯 멀쩡하다. 

대리점을 운영하는 대표이지만 영업보다 서비스에 대한 마인드로 손님을 대한다는 게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말수가 워낙 적어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이 대표지만 오랫동안 이곳을 드나든 이들에겐 “정이 참 많은 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단지 자전거 바퀴를 갈기 위해 이 대표를 찾아도 다른 곳에 문제는 없는지 무심한 듯 점검을 해준다. 단골손님에겐 부품 비용을 받지 않기도 한다. 단골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덕 대표는 장갑이 불편하다며 늘 맨손으로 작업해 늘 손에 기름이 묻어 있다.

구매 결정 후 한창 조립을 하고 있을 때, 다른 기종으로 바꿔 구매하겠다고 하자 불쾌한 표정 없이 “그러세요”라며 처음부터 묵묵히 다시 조립 작업을 하는 이가 이재덕 대표다. “바퀴 안에 있는 고무 튜브 갈겠다고 그것만 해주면 쓰나. 보는 김에 이곳저곳 봐주는 거지. 번거롭더라도 서비스업이잖아.” 이재덕 대표의 철학이 묻어 있는 대목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45년 같은 자리에서 하다 보니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는 데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 대표는 “불편하긴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 고맙지. 살펴가요 기자 양반.” 무심하게 인사를 전한 이재덕 대표. “땀 흘리고 일한 뒤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된다”는 이재덕 대표가 건강하게 50년을 마저 채우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바람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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