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과 회화 접목한 대표작
 

“볼륨이라고 하면 보통 앞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들어간 것도 볼륨이 될 수 있죠.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시각이 달라지니까요.”
조각가 김동호는 그의 모든 작품에 철학적 고민과 생각을 담는 작가다.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상식을 부정하고 의문을 갖는데서 예술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의문은 끝없는 고민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표출되는 것이 작품인 것이다. 그렇기에 김동호 작가에게는 예술이 ‘자기와의 고뇌’이며 예술가는 ‘자기 작품세계와 싸우는 외로운 사람’이다. 

대학 졸업 작품을 준비하며 김 작가는 조각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조각의 기본인 볼륨의 방향이 왜 안에서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제한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 반대 방향도 볼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었다. 
당시 김동호의 이론은 조각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였기에 없는 것을 찾아내고 창조하는 ‘예술’이라는 분야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그 도전은 계속됐다. 

“조각이라고 하면 보통 큰 덩어리를 쪼개고 다듬어서 완성한다고 생각하죠. 저는 그걸 부정했어요. 목판이나 석판 조각을 쌓아올려 형상화하거나 석재를 캔버스로 보고 그 위에 선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조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당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은 지금의 조각가 김동호를 만들었고, 대표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내 공항터미널에 설치된 ‘하나가 되어’는 석재를 차곡차곡 쌓아올려 세운 그의 대표작이다. 이어 빨강 노랑 파랑 등 오방색의 선을 석재 위에 수백 번 그어 창작한 작품 역시 입체가 아닌 평면성을 강조한 조각 작품으로 그를 대표하고 있다. 당시 김 작가는 석조물의 평면적인 조형미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유일한 작가로 조각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작품을 두고 ‘조각이 아닌 회화’라고 혹평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김 작가는 그런 평론에 신경 쓰지 않았다. 기존의 형상을 본 뜬 것만이 조각이라면 굳이 조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시대를 앞선 그의 생각은 결국 인정받았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등 각종 공모전에서 그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김 작가는 그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미친 칼 구스타프 융을 만난다. 칼 구스타프 융은 그의 이론서에서 “미술이라는 것은 우리 눈으로만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잠재적인 의식이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라고 말했다. 의식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통찰이 무의식 속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각가 김동호는 칼의 이론이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예술적 고민과 일맥상통한다고 봤다. 

“진정한 예술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닌 자신의 느낌과 감성을 그대로 형상으로 표현하는데 있다고 봐요. 인정받기 위한 작품이 아닌 내 직관으로 고뇌와 외로움과 싸워 만든 그런 결과물이어야 해요.”
김 작가는 그렇게 자신도 알 수 없는 무의식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아무 계획 없이 생각 없이 마음가는대로 꾸며 무의미함을 그대로 표현하는 작품을 시도한 것이다.  

그의 작품 속 석판 위에 그어진 직선과 곡선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치 어떤 의도를 통해 만들어진 듯 형상을 갖추고 있다. 작가가 무엇을 의도하지 않았으니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보는 이의 몫이다. 산으로 보이면 산이 되고 물로 보이면 물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관념을 따르지 않았지만 오히려 대중과의 거리감은 좁힐 수 있었다는 점에서 조각가 김동호의 도전은 더 큰 의미가 있다. 

“예술은 순수하지 않으면 안 돼요. 예술가는 아주 순수한 마음이라야 작품이 나와요. 가만히 내 인생을 돌아보면 ‘나는 참 평생을 예술 하나만을 바라봤구나’ 싶어요. 대중도 저를 그렇게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