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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먹을 수 있는 혈압약
  • 이동훈(서울새로운내과 원장)
  • 승인 2019.07.0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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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친구들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 아이들의 학교 교육과 학원 등 육아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 모임에서 한 명이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담소를 나누던 중 생전 처음 느끼는 강한 통증이 머리를 덮쳤다. 같이 있던 친구 한 명이 두통약을 사러 약국에 갔고, 두통이 심해지면서 구역감을 느껴 화장실로 향했으나 곧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응급실로 이송해 컴퓨터 단층촬영을 시행한 결과 뇌출혈이었다. 평소 고혈압이 있었으나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치료를 받지 않았다.

1958년 영국 ICI 제약회사에 입사한 제임스 블랙은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사망했기 때문에 심근경색을 예방하는 혈압약 개발에 관심이 있었다. 긴장하게 될 경우 아드레날린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혈압을 상승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호르몬의 기능을 차단할 경우 혈압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 물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아드레날린은 기관지 천식 치료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었다. 아드레날린이 천식 발작에 효과적이었으나 지속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긴 작용 시간을 가진 물질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아드레날린의 구조를 변화시키면서 신약 개발을 하고 있었다. 1958년 미국의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사의 연구진은 아드레날린의 구조를 변환시켜 조금 더 크게 만들었는데, 이 물질은 천식 발작에 전혀 효과가 없고 오히려 혈관들이 늘어나는 반응을 보였다. 기관지가 확장되고 혈관이 수축되는 것이 아드레날린의 효과였는데, 정반대였으니 두말할 필요 없이 신약 개발에는 실패한 것이었다.

일라이 릴리사의 물질은 학술 논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이 물질에 ICI 제약회사 젊은 연구원 블랙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천천히 뛰면 심장 근육에 산소가 적게 필요할 것이고, 혈관이 막혀 산소 공급이 잘 안 되는 심근경색과 같은 상황에서 심장 세포를 회생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블랙의 생각은 적중했다. 엘 릴리사가 개발한 물질을 좀 더 안정화시킨 약품이 협심증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뿐 아니라 높은 혈압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었다. 블랙은 새롭게 만든 약품을 연구소가 위치한 앨더리 공원 이름을 따서 앨더린으로 붙였다.

협심증뿐 아니라 고혈압 치료제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장기간 임상 연구가 필요했다. 그러나 앨더린은 오랜 기간 사용할 경우 흉선 종양이라는 부작용이 발견됐고, 고혈압 치료제로는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됐다. 앨더린보다 부작용이 없고 더 효과적인 약물을 개발해야 했다. 앨더린을 기초로 수백 가지 화학물질이 합성됐고 1963년 마침내 새로운 약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물질 역시 연구소가 위치한 앨더리 공원의 이름을 따서 인데날이라고 붙였다. 인데날은 현재까지도 사용되는 의약품이다.

인데날은 작용시간이 짧아 하루에 2~3회 복용해야 했으나 이후 더 오랫동안 지속되고 부작용이 줄어든 고혈압 치료제들이 개발됐다. 혈압을 낮추는 약품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심혈관 질환과 뇌출혈을 예방할 수 있었으나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언제까지 얼마나 오랜 기간 혈압약을 복용해야 하는지, 문제가 없는데 불필요하게 약을 복용하는 것이 아닌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심근경색이나 뇌출혈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면 치료 필요성을 쉽게 느끼겠지만,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혈압약 복용으로 예방을 한 결과 반드시 약을 먹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질병이 발생한 뒤에 치료하는 것은 늦다. 혈압약은 심근경색, 뇌출혈 등의 근본 원인을 미리 예방하는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므로 만일 혈압이 높은 것을 확인하면 가까운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를 받은 후 처방받은 약품을 반드시 복용해야 한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은 반대로 평생 동안 약을 먹으면 심근경색과 뇌출혈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동훈(서울새로운내과 원장)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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