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 그림기행집 눈길

‘누각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전주천과 한벽교.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주천과 어우러진 주변의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아름다운 절경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으니 누각 옆으로 가로질러 뻗어있는 전주천의 교각이다. 쓱싹쓱싹 다리를 지울 수도 없고 아쉽다.’

‘향교 한쪽에서는 어르신들이 모여앉아 사물놀이 공연 준비를 하시는지, 아니면 유교 교육을 받고 계시는지 모여서 연습을 하고 계셨다. 그 모습이 여유롭게 한가로워 보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공간에는 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사연이 있는 장소는 별 것 없는 곳도 특별해진다. 관광지에 이야기를 입혀 상품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화가 정태균은 이런 점을 활용해 한옥마을 전주 곳곳을 수묵화와 글로 담은 책을 발간하면서 처음 대중에 이름을 알린 작가다.

“관광지나 지역을 소개하는 책자는 많잖아요. 그런데 다들 흔하게 볼 수 있는 대표 사진에 설명을 끼워 넣는 식이고 글이 너무 길어서 잘 보지도 않아요. 그걸 탈피하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정 작가는 2014년 붓과 화선지를 들고 전주 한옥마을을 걸어 다니며 풍경을 그림으로 담고 글로 썼다. 떡갈나무 아래 수다 삼매경에 빠진 벽화마을 할머니들, 전주 오목대 누각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족의 모습 등 여느 관광책자와는 달리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지만 정이 넘치는 공간의 이야기까지 책 속에 담았다.

1년에 걸쳐 완성한 <왕의 도시 전주를 탐하다>는 전례 없던 기행집이라는 평을 들으며 이슈를 모았다. 이후 전라북도 문화관광재단이 정 작가의 책을 보고 전북의 구석구석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 달라며 의뢰해왔다. 2017, 2018년 발간한 <전북산수>에는 3년여에 걸쳐 정 작가가 직접 방문해 화폭에 담은 14개 시·군 관광지 130여곳의 모습과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림으로 소개된 장소를 실물과 비교하는 재미는 역사적 장소든 그저 평범한 시골길이든 방문객에게 특별한 여행을 선사하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수묵인물화를 그려왔던 정태균 작가가 5년여의 시간을 들인 기행집 프로젝트를 하면서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인물화로 다져진 붓의 놀림은 여느 수묵풍경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같은 풍경임에도 그의 작품엔 표정이 있고 감정이 담긴다. 즐겁고 행복하기도 하고 때로 외롭고 쓸쓸하기도 하다. 여기에 한 공간을 차분하면서도 위트 있게 담아내는 그만의 화법은 장소에 의미를 더하는 힘을 발휘한다. 세밀하면서도 대범한 붓의 강약은 매우 치밀해 화폭 전체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장소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해석이기에 정 작가의 사물을 꿰뚫는 통찰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정태균 작가는 군산 영화동에 위치한 (사)이당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다. 40년 넘게 동네 목욕탕이자 여관이었던 ‘영화장’은 2008년 이후 빈 건물로 방치됐던 곳이다. 2015년 이 영화장을 리모델링해 미술관으로 꾸민 것이 이당미술관이다. 미술관의 이름이 된 서예가 이당 선생은 정 작가의 모친이며 전북 대표 서예가인 강암 송성용(1913~1999) 선생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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