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에 관한 리터러시가 필요한 이유-

때 이른 더위에 올해는 얼마나 더울지 벌써부터 걱정하는 소리와 함께 요즘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 소식이 아프리카 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이다. 국내에서 아직까지 발생한 적이 없는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은 감염되면 치사율이 100%에 달해 양돈산업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출혈성 열성 전염병이다. 주로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발생해 왔으나, 최근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홍콩 등 아시아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북한에서도 발병한 것으로 알려져 국내 유입 위험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 방역당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방역 대책을 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요 언론 보도 행태를 보면 유감스러운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다음은 모 유력 일간지 기사에 언급된 내용이다.

“이 밖에 우리 돼지 농장에서 일하는 대다수 노동자가 이주민이라는 점도 위험 요소다. 불법 상태로 일하는 상당수 이주노동자가 감염국의 돈육제품을 들여오는 등 방역 통제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 감염국에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최소 5일 이상 다른 곳에 머무르다가 농장에 들어가도록 해야 하나, 개별 농장에서 이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인권보도준칙에 의하면 ‘불법’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해당 기사는 불법이라고 쓴 것도 유감이지만, “불법 상태로 일하는 상당수 이주노동자가 감염국의 돈육제품을 들여오는 등 방역 통제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말로 편견을 부추겼다. 그러면서 “감염국에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최소 5일 이상 다른 곳에 머무르다가 농장에 들어가도록 해야 하나”라며 개별 농장에서 지키지 않아 방역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상당수 이주노동자가 불법이라는 전제를 깔다 보니, 합법적으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 일정 기간 외부에 머물다 농장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당착을 범했다. 합법적으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을 ‘불법 상태로 일하고 이는 상당수’로 만들어 버린 기사이다.

‘상당수’라 했으면 그 근거를 밝혀야 하고, 그들이 돈육제품을 반입한다는 증거를 대야 한다. 기자는 미등록자들은 출입국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감역국에서 돈육제품을 가져오는 게 원천 차단된다는 걸 모른 척했거나, 신규 입국자들 상당수를 미등록자로 단정하는 우를 범했다.

이런 식의 접근은 ASF가 발병할 경우 ‘이주노동자 때문에 방역에 구멍이 생겼다 혹은 뚫렸다’는 식으로 이주노동자를 희생양 삼기 딱 좋다. 기자는 방역 당국의 책임을 너무 손쉽게 이주노동자에게 전가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방역은 뒷전이고 이주민 혐오만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라는 명칭 자체만 해도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데, 기사를 통해 이주민 편견까지 더한 셈이다.

비록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아프리카에서 1921년 최초 발견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서 발병하고 있는 질병이다.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프리카’라는 단어로 인해 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편견과 부정적 인식을 끼치고 있다면 명칭 변경을 고민해 봐야 한다.

아프리카라는 지역 이름 안 쓴다고 질병에 대한 공포와 심각성이 간과되는 것도 아닌 만큼,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방식의 병명 개칭을 고민해 봐야 한다. WHO는 질병을 명명할 때, 불필요하게 지역이나 사람 이름, 동물 종이 들어감으로써 과도하게 공포를 확산시키거나 편견을 조장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중립적 용어를 사용하라고 제언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ASF도 질병의 성격을 과학적,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하고 알기 쉽게, ‘출혈성 돼지 열병’ 정도로 해도 될 일이다. 아프리카에 대해 좋은 것, 잘한 것은 특별하고 우발적인 것으로 치부면서, 안 좋은 것은 대륙 전체로 일반화하는 경향은 ‘피부색’에 대한 편견이 깔려 있지 않은지 따져봐야 한다. 글로벌 시대, 이주가 일상인 세상을 사는 우리는 언어 감수성이 인권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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