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박물관에 대한 단상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기흥구 동백동에 있는 용인시박물관 모습.

언제인지 가물가물하지만 거의 15년 전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당시 용인시에는 택지개발과 아파트 건설 등 각종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당시 연평균 인구증가율이 10%를 넘었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많은 땅이 개발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용인에서 ‘난개발’ ‘막개발’이라는 말이 그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지역언론에 몸담은 기자의 관심은 난개발과 그로 인해 파생하는 문제였다. 큰 주목은 받지 못했지만, 그중 하나가 개발과정에서 발견되는 각종 출토 유물, 즉 땅 속 문화재였다.

용인에서는 문화재의 보고라고 할 만큼 학술적 가치가 큰 문화재가 출토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개발과정에서 출토되는 수많은 유물은 용인지역이 아닌 발굴기관이나 국가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땅 속 문화재 실태를 취재했던 2005년경 용인시는 어디에서 어떤 유물이 발견됐는지, 또 그 양은 얼마나 되며 어디에 있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장문화재와 출토유물 등에 대해 체계적으로 기록,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 출토 문화재를 시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시립박물관’ 건립 필요성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로부터 8,9년이 흐른 뒤였다. 2005년 기흥구 영덕동 무덤에서 출토된 16세기 조선시대 반가의 여성이 입었던 옷 등을 공개하는 특별전이 2013년 8월~9월까지 한 달여간 열린 적이 있었다. ‘조선 반가의 여인, 용인에 잠들다’라는 전시였는데, 장소는 용인이 아닌 국립대구박물관이었다. 흥덕지구 개발과정에서 무연고 여성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이었는데, 난사전통복식문화재연구소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보존처리 한 후 국립대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용인시에 시립박물관이 있었다면 조선 반가 여인의 옷을 용인에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문화재의 보고 용인, 기억을 소환하다

용인시박물관이 2017년 공개 구입한 용인군 농민도장 졸업사진첩. 시는 박물관으로 전환한 이후 유물 구입에 나서고 있다.

용인시에선 1991년 수지1지구를 시작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택지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그동안 수백, 수천년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매장문화재가 속속 드러났다. 이 가운데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 유물도 적지 않았다. 한 향토사학자가 ‘용인은 개발하는 곳마다 유물이 출토될 정도로 문화재의 보고’라고 말했던 것처럼, 지금도 매장문화재가 끊임없이 출토되고 있다.

한강유역 일대에서 확인되는 여주 매룡리나 파주 성동리 유적에 필적하는 경기지역 최대 규모의 신라시대 고분군이 발견됐고, 경기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백제시대 ‘주구목곽묘’가 발견되기도 했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97년에는 수지 풍덕천동 아파트 개발과정 중에 군사요충지였음을 짐작케 하는 조선시대 현자총통 2점이 발견돼 문화계를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앞서 밝혔듯이 용인지역은 ‘문화의 보고’라고 할 만큼 많은 중요 문화재를 갖고 있는 지역이다.

개발과정에서 소중한 문화유산이 전문 조사기관에 의해 보존되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때는 문화재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문화재보호법이 강화돼 문화재가 개발 몸살 속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정작 용인시민들은 용인지역에서 발견, 출토한 문화재가 무엇인지, 그 유적과 유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또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문화재의 경우 국가에 귀속되는데, 용인시가 최근까지 진행한 발굴조사는 적어도 수백회, 출토 유물만 수만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 대부분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고, 나머지 출토유물은 대개 대학박물관 등 발굴기관이나 경기도박물관 등 지역박물관 등에 흩어져 있다.

10여 년 전 이천, 하남 등 다른 지역 시립박물관을 취재하면서 당시 하남역사박물관장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나 출토된 유물, 소중한 개인 소장자료 등은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경기도박물관에서 모두 담아낼 수도 담아내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아마도 지역 주민들과 청소년에게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지역박물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려 하지 않았을까?

5년여 만에 다시 찾은 박물관, 그리고 아쉬움

용인시박물관 3층에 있는 역사체험실 어린이 노리마루 모습. 뒤로 심곡서원 북카페가 보인다.

시립박물관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기흥구 동백동에 용인의 문화유적을 한 곳에서 살펴보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생겼다. 2009년 11월 문을 연 ‘용인문화유적전시관’이다. 이 곳은 용인시가 직접 운영하는 첫 전시관이라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었다. 2002년 동백택지개발지구 발굴조사 중 역사적·학술적 보존가치가 뛰어난 구석기 문화층을 이전·복원하고, 용인의 역사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기 위해 건립된 것이다.

용인문화유적전시관은 1층 기획전시실, 용인 행정역사관, 역사 자료정보실인 아카이브실이 있다. 2층에는 역사인물실과 역사문화실, 3층에는 발굴장과 북카페 등 어린이 체험학습실, 미디어아트스페이스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개관 당시 보유 유물은 2737점으로 수준은 미미했다. 야외전시장에는 청덕지구 유적(우물, 구덩이 유구), 동백지구 유적(돌덧널 무덤, 돌방무덤), 마북동 집자리 유적 등이 전시돼 있다.

1층 기획전시실에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전 ‘100년 전 용인, 그날의 함성’이 열리고 있다.

용인유적전시관은 10년이 지나서 용인시박물관으로 명칭이 변경됐지만 공간 구성은 변함이 없다. 1층에 기증실이 만들어졌고, 다목적실 옆 한쪽에 문화교육실이라는 문화공간이 생긴 정도다. 최근 유적전시관에서 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한 뒤 처음 박물관을 찾았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관람할 겸, 전시 유물을 보기 위해서다. 예나 지금이나 걸어서 언제라도 갈 수 있는 도심 문화공간이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기대가 컸던 것일까? 기획전시실은 물론 기증실, 2층 역사인물실과 역사문화실을 둘러보면서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용인시 유일, 용인을 대표하는 박물관의 유물치곤 빈곤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기증실은 반가움에 앞서 실망감이 더 컸다. 박물관 개관부터 현재까지 수집해온 기증유물을 소개하는 공간치곤 너무 좁은데다 유물도 몇 점 없었기 때문이다. 실망감 속에서 체험학습 나왔는지 학생들로 북적이는 모습에서 그나마 위안이 됐음을 고백한다.

박물관, 그릇 속 무엇을 담을 것인가

연재를 시작하면서 밝혔듯이 신세계상업사박물관, 세중옛돌박물관, 만화박물관 등 지역문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박물관이 하나둘 용인을 떠나거나 문을 닫은 가운데 박물관에 대한 가치를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다. 지역박물관은 그간 출토된 유물에 대한 정리를 넘어 지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뿐 아니라 청소년과 시민들이 정체성을 찾는데 기여하리라는 바람을 넘어 믿음이 있다. 출토된 유물만 수만점, 수많은 문화재와 기록유산을 갖고 있는 인구 106만의 대도시에서 지금의 용인시박물관이 지역을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박물관 시설이라는 ‘형식’보다 박물관을 어떻게 운영하고, 무엇을 담아낼 것인가 하는 ‘내용’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인지 박물관 문을 나서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