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보면 숙적 관계가 제법 있다. 멀리에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있을 것이며, 한국과 일본 간을 말할 때도 흔히 이 표현을 쓴다. 숙적이란 오래된 적을 말한다. 이들 관계에 있는 양자는 분명 처참한 역사가 있다. 전쟁이나 탄압 혹은 점령 등 말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앙금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시작부터 대척점까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이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 이상 숙적이 동지가 되기는 어려 울 것이다.

공무원은 공공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공익이란 공공의 이익, 다수가 만족하는 쪽으로 일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행정법은 공무원이 공익만 추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듯하다. 사익을 위해 공익이 훼손당하는 것도 불가피하다. 때문에 법은 근거로 업무를 하는 공무원이 결과적으로 공익에 앞서 사익을 위한 행정을 하는 경우도 은근 많다.

이럴 때 공공은 가만히 있질 않는다. 왜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일하는 공무원이 다수가 반대하는 사업에 허가를 내주냐며 반발한다. 명확한 논리로 꾸중 하지만 벽창호만 서 있을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민원을 제기하는 시민들과 공무원은 숙적 관계에 버금갈 정도로 긴장감이 흐른다. 서로 내세우는 논리가 반대방향을 항하고 있으니 오랜 적은 아니더라도 분명 대립관계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8월이면 활동이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이는 용인시난개발조사특별위원회(특위)가 백서에 들어갈 내용 정리를 마무리했단다. 백서에는 용인 곳곳을 다니며 찾은 난개발 현장의 문제점, 대안까지 들어가 있다. 특위와 용인시 개발 관련 부서는 이 내용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자리를 마련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 자리에서 서로간의 입장을 어느 정도 확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잘은 몰라도 그렇게 발전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최근 특위는 용인시가 세운 개발 기준 중 하나인 표고 선정을 두고 쓴 소리를 했다. 난개발을 막지도 못할 뿐 아니라 민원만 쏟아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용인 공무원 내부에서는 특위를 8월 활동을 끝으로 해산할 가능성이 높은 임시 조직으로 보는 분위기다. 때문에 제작에 들어갈 백서는 자칫 반쪽 성과물에 머물 공산이 커졌다.

특위 활동이 본격화 될 당시부터 공무원과의 협업은 한계가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기 위해 특위와 관련 부서는 서로 소통하는 기회도 가졌다. 하지만 활동 막바지에 이른 지금, 민관이 협력한 ‘난개발 제로’ 실험이 성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만큼 변한 것은 크게 없다. 오히려 특위가 산고 끝에 세상에 내놓은 백서는 조직개편이나 관련 법규 개정이 없으면 사문화 될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은 공무원 나름 백서에 담긴 내용을 오롯이 행정에 반영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며, 특위 역시 백서 내용을 행정으로 반영해야 할 이유를 만가지 이상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걱정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난개발 저지를 위해 모인 공무원과 민간인들이 백서 발간 즉 특위 활동 마무리 이후 숙적이 되면 어쩌나. 어느 한쪽이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 이상 숙적이 동지가 되기는 어렵다 했다. 백서를 기준으로 공무원이 특위 입장이 되지 않는다면, 특위에서 활동한 위원들이 공무원이 되지 않는 이상 백서는 오히려 둘 사이를 악화 시킬 수도 있는 판도라의 상자일지 모른다.

엄격히 따지면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에게 숙적은 남에겐 북이며 북에겐 남이다.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한 한국전쟁도 치렀다.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으니 숙적으로 조건은 대체로 다 갖췄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남북을 숙적으로 규정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이유는 분명하다. 한민족, ‘우리’이기 때문이다. 용인 발전을 위해 한치 오차 없이 고민하고 일하는 자세라면 우리는 모두 용인시민이다. 그 믿음을 이제 공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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