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면 흥분할 때 뒷목을 잡으면서 혈압이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한다. 혈압의 경우 심리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안해지면 혈압은 떨어지는 반면, 긴장할 경우 혈압이 올라간다. 혈압은 심리 상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마음을 나타내는 한자 ‘心’은 심장을 나타낸다. 고대 의학자들은 심장은 영혼이 깃들어져 있고 우리 몸을 주관한다고 생각했다.

고대 동양의서인 <내경>이나 <동의보감>에서도 심장이 마음을 다스리고 정신상태를 주관한다고 기록했다. 뇌는 물이 있어 심장에서 생기는 열기를 발산하는 장소로 평가됐다. 서양 역시 비슷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장에 영혼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했고, 뇌는 혈액의 열기를 식히는 장소로 생각했다. 심장이 영혼의 집이었기 때문에 이집트인들도 미라를 만들 때 뇌는 제거해서 버린 반면, 심장은 따로 꺼내서 붕대로 잘 싸서 보관했다.

로마시대 의학자 갈렌은 검투사들에게 뇌 손상이 발생할 경우 팔다리에 마비가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뇌가 몸을 조정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영혼이 심장에 있다는 생각이었기에 뇌와 심장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았는데, 마침 뇌에서 나오는 가는 끈들을 찾아냈다. 부드럽고 가는 끈들은 온몸 여러 곳에 퍼져 있었고 심장과도 이어져 있었다.

팔다리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심장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심장 박동은 감정 상태와 더 관련돼 있어 흥분할 경우 빨라지고 안정될 때는 느려졌다. 심장이 멈출 경우 뇌 기능도 정지했으며, 온몸의 장기도 기능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뇌 기능이 없어도 심장은 일정 기간 박동했다.

혈관과 다른 부드러운 끈을 심장에서 시작되는 영혼의 기가 이동하는 통로로 생각했다. 감정이 서로 교통한다는 뜻의 ‘교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음식을 먹으면 영양분과 함께 자연의 기가 흡수돼 심장을 간 뒤에 심장의 영혼과 합쳐져서 뇌로 이동한 뒤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는 갈렌의 학설은 중세시대까지 유럽을 지배했다.

17세기에 발견된 현미경은 갈렌이 발견한 끈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됐다. 끈 중간의 결절들을 확대하자 가는 세포와 굵은 세포들이 있고, 끈이 하나의 세포로 길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중간에 중계탑 같이 새롭게 시작되는 세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세포들이 ‘신경’이었다. 19세기 초 헨레가 혈관 주변의 근육에 미세한 신경들이 존재하는 사실을 발견했고, 신경 줄기를 절단할 경우 혈관이 수축되지 못하고 늘어나는 것을 관찰했다. 헨레가 발견한 신경들은 교감 신경이었다.

흥분하거나 긴장할 때 혈관 수축으로 혈압이 상승하는 것은 교감 신경의 자극으로 인한 것인데, 교감 신경 기능을 떨어뜨릴 경우 혈압을 낮출 수 있다. 만일 교감 신경을 절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혈압은 떨어질 것이다. 실제 교감 신경을 절단하자 정말 혈압이 떨어졌다. 20세기 초반 고혈압 치료 방법으로 교감 신경 절제술이 시행됐다. 그러나 혈압이 떨어진 환자들도 있었지만 감각 이상, 땀샘 기능 장애 등의 부작용에 시달렸다. 더 큰 문제는 수술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다시 혈압이 올라가기도 했다. 수술 부작용은 고혈압 치료 방법을 다른 형태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저염식, 운동 등의 생활요법이 시도되기도 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급기야 1945년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까지 고혈압으로 사망하였다. 고혈압을 방치할 수도 없었고 새로운 치료방법도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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