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이 세계 팝음악의 심장인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열광적인 공연을 벌이며 ‘21세기 비틀스’로 평가받은 2019년 5월은 “한민족이 동아시아 전체를 무대로 삼으리라” 예언한 류근 선생이 세상을 뜬 지 98주년이 된다. 류근은 1861년 용인 처인구 마평동에서 태어나 평생 한글과 단군, 그리고 항일 언론활동에 평생을 바치다가 고향에 묻힌 용인의 큰 스승이다. 어려서부터 한학과 문장에 뛰어났던 그는 ‘주유천하’ 하며 여러 스승을 찾아 공부하고, 34세가 된 1894년 서울에 올라와 탁지부의 주사로 일했다. 하지만 국모 민비가 피살되고 1896년 2월 고종마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자 과감히 관직을 버렸다.

류근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등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독립협회 활동 무렵 박은식과 주시경·장지연 등과 친밀한 교유를 맺었는데, 장지연과는 사돈지간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식회사 신문사인 황성신문사에서 주필에 이어 사장으로 선임돼 3년간 신문사를 이끌었다. 그중 ‘을사늑약’과 오적을 규탄한 <시일야방성대곡>을 장지연과 함께 지은 일은 민족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이 일로 장지연 등 10명이 구속되고 신문도 무기한 발행 정지 처분을 받게 되자, 류근은 휘문의숙 숙장을 맡아 교육계몽 활동에 전념했다.

류근 저서 '신찬초등역사'

류근은 최남선이 주관하는 조선광문회에서 고전간행과 사전편찬에 참여해 상근 고문을 맡았다. 최남선은 그에게 한문대자전의 편찬 책임을 맡겨 주시경·김두봉 등 당대 최고 학자들과 함께 1915년 《신자전》을 발간했다. 주시경이 만든 배달말글몯음과 조선어강습원에서도 원장직을 이어 맡았다. 이 무렵 그는 ‘돌놈’이란 뜻으로 석농이라 호를 지었다. 류근은 박은식과 함께 초등역사책인 <초등동국역사>(1908년), <신찬초등역사>(1910년) 등을 발간해 민족역사 고취에 힘썼다. 특히 단군을 모시는 대종교에 가입해 단조사고 편찬위원을 맡아 활동했다. 1917년 김교헌이 대종교의 총본부를 만주로 옮기게 되자, 남한 전역을 관장하는 남도본사의 책임을 맡게 됐다. 류근은 1921년 사망 직전까지 강우 등과 함께 교무를 전담하며 해외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대종교인 류근이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자료를 집대성한 책이 <단조사고>이다.

나아가 류근은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4월 23일 개최된 13도 대표자의 국민대회에 대종교계 대표로 참여했다. 그는 대종교 사무실에 상주하면서 동지들과의 연락을 담당했으며, 국민대회가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노력했다. 그는 ‘한성임시정부’의 공포와 정부 각료 선정에 관계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게 된다.

류근 선생이 쓴 애국가

3·1운동의 좌절 이후 옥중에서 풀려난 류근은 민족계몽과 실력 양성에 힘써야 한다며 신문사 설립을 처음 발의했다. 이어 김성수와 함께 신문 설립에 나섰으니, ‘동아일보’ 라는 제호도 “장차 동아시아 전체를 무대로 삼아야 한다”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 한다. 이에 1920년 4월《동아일보》창간에 참여해 초대 편집감독이 됐다. 4월 20일자 동아일보 창간호에 실린 논설 ‘아보의 본분과 책임’에서 그는 “무력주의가 문화주의로, 제국주의가 사회주의로, 자본주의가 노동주의로 변천하였다”면서 이러한 때에 동아일보는 “조선민중의 기관수며, 우편배달부며, 전화교환수며, 대의소며, 정치가며, 법률가며, 경제가며, 사회당이며, 노동주의”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문창간에 흡족해하던 그는 잦은 감옥생활과 오랜 숙환으로 1921년 5월 20일 오후 6시, 환갑을 눈앞에 둔 61세로 사망했다. 당시 유족인 외아들 연수는 3·1운동 건으로 체포돼 안동감옥에 수감돼 있어 임종을 보지 못했다.

고인은 고향인 용인시 처인구 남동 노고봉 산록(현 현충탑 동편 담장 아래)에 묻혔다. 당시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도 추도식을 거행했다. 그의 동지이자 사돈인 장지연이 애통해하다가 6개월 만에 세상을 떴다.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국학자인 그의 업적을 기려 그의 묘가 있는 현 처인구청과 용인중앙시장 일대 거리를 ‘석농길’이라 이름 지었다. 내 자신을 사랑하고, 내 고향과 조상의 말과 역사를 사랑하는 이만이 거침없이 세계를 품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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